반도체 공룡 인텔 파운드리 진출,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길에 먹구름

▲ 삼성전자 오스틴 파운드리공장.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회사(IDM)인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파운드리시장 진입은 삼성전자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사업을 키워 글로벌 비메모리 1위로 도약하려는 삼성전자의 구상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으로 파악된다.

24일 인텔이 파운드리사업 진출을 뼈대로 하는 ‘IDM2.0’ 전략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가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비전2030 계획에도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30년 비메모리분야 1위를 목표로 '반도체 비전2030'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요한 축을 맡은 파운드리분야에서 1위 기업인 대만 TSMC와 치열한 미세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좀처럼 점유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글로벌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은 18%, TSMC는 56%로 격차가 상당하다. TSMC가 애플 반도체를 독점생산하는 것을 비롯해 AMD, 미디어텍, 브로드컴 등 주요 고객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데 비해 삼성전자는 퀄컴, 엔비디아의 일부 제품을 수주하는 등 고객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인텔로부터 반도체 물량을 대거 수주하면 TSMC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인텔이 자체 미세공정 진입에 난항을 겪으면서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하는 종합반도체회사에서 설계에 집중하는 팹리스업체로 전환할 가능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텔이 외주생산에 나선다면 경쟁사 애플의 협력사인 TSMC보다 삼성전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1월 삼성전자가 인텔 메인보드 칩셋 생산을 수주하면서 이러한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인텔은 예상과 반대로 팹리스 전환이 아니라 종합반도체회사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삼성전자로서는 초대형 잠재고객을 잃게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인텔은 파운드리사업에 직접 뛰어 들어 삼성전자의 또다른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고객 유치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는 대목이다.

2월 취임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4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독립형 사업부서로 인텔파운드리서비스(Intel Foundry Service)를 설립해 파운드리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생산시설 확충에 수백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로이터는 “인텔의 전략이 선도업체인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에게 직접적 도전이 될 것이다”고 바라봤다.

겔싱어 CEO는 이날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의 80%가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생산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과 유럽 생산시설 확대를 예고하며 사실상 TSMC와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위해 오스틴, 애리조나, 뉴욕 등을 물색하고 있으나 투자규모는 100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인텔이 발표한 애리조나 증설규모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더구나 인텔을 향한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전폭적 지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경쟁은 더욱 버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의 온라인 기자회견 행사에는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 등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물론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등이 참석하며 인텔의 파운드리사업 진출을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였다.

겔싱어 CEO는 이들 외에도 아마존, 구글, 퀄컴 등의 기업이 인텔의 파운드리사업을 지지하고 있다며 고객 확보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자체 반도체 설계를 계획하는 대형 IT기업들이 줄줄이 인텔 파운드리로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아직까지 인텔의 미세공정 기술력이 TSMC나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파운드리시장에서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텔은 14나노 공정에서 10나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었고 극자외선(EUV) 공정을 활용한 7나노 이하 제품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와 TSMC는 5나노 양산에 성공하고 3나노 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대략 2~3년가량 기술 격차가 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과거에도 파운드리사업을 시도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이번에 나온 내용 역시 구체적이지 않아 추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