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계열사인 실리콘웍스가 LX그룹 계열사로 새 출발하면서 다양한 반도체 관련 신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설 LX그룹을 이끌 구본준 LG 고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에서 LG그룹의 경쟁력을 발굴해온 경험이 풍부하다. 그러다 보니 LX그룹의 반도체사업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리콘웍스에 구본준 반도체 의지 실리나, LX그룹 첨단 신사업 찾는다

구본준 LG 고문.


19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실리콘웍스는 LG그룹에서 분할된 뒤 기존 주력제품 디스플레이구동칩(DDI)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실리콘웍스에 관해 “중장기적으로는 계열분리 뒤 차세대 성장동력을 위해 준비 중인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사업 진출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카바이드는 반도체분야 신소재로 기존 소재 실리콘보다 더 높은 전압과 온도를 버틸 수 있게 해준다. 

전력반도체는 전자제품에서 전력을 변환하거나 전송하는 과정에 사용되는데 여기에 실리콘카바이드가 적용되면 전력반도체의 성능이 더 개선된다. 특히 부품 내구성이 필요한 전기자동차 쪽에서 실리콘카바이드 기반 전력반도체가 점점 더 많이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역시 반도체 중 하나로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 다양한 전자제품의 동작을 제어하는 데 쓰인다. 최근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반도체로 꼽힐 만큼 시장 수요가 크다.

실리콘웍스는 점점 커지는 디스플레이시장과 주요 고객사 LG디스플레이의 성장에 힘입어 꾸준히 실적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에는 연간 매출 1조 원을 역대 처음으로 넘었고 올해는 영업이익 1천억 원대를 사상 처음으로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실리콘웍스가 이런 성장세에 만족하지 않고 신사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에는 향후 LX그룹 경영을 총괄할 구본준 고문이 있다.

LG그룹 지주회사 LG는 26일 주주총회를 열고 신설 지주회사 LX홀딩스 설립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예정됐다. 실리콘웍스, LG상사, LG하우시스, LGMMA 등 기존 LG그룹 계열사가 LX홀딩스 산하로 들어가 LX그룹을 꾸리게 된다. 구본준 고문이 LX홀딩스 대표를 맡는다.

구 고문은 LG그룹에서 일하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사업에 애착을 보여 왔다.

1990년대 후반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병되기 전 마지막으로 LG반도체 대표를 역임했다. 당시 통합법인의 주체로 현대전자가 적합하다는 보고서를 낸 미국 자문사 아서D리틀을 고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반도체사업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후 LG반도체는 끝내 다른 그룹에 넘어갔다. 하지만 첨단사업을 향한 구 고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1999년 LG필립스LCD 설립을 진두지휘해 그룹 내 수많은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디스플레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그 뒤 LG필립스LCD는 LG디스플레이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적 디스플레이기업으로 성장했다. LG디스플레이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형 올레드(OLED)패널을 양산하는 등 뛰어난 기술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이름이 높다.

이처럼 성과를 내면서도 구 고문에게는 여전히 반도체에 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부터 LG전자 대표를 지내며 자체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개발을 추진했다. 반도체 등 핵심부품을 내재화해 스마트폰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구 고문 밑에서 스마트폰용 AP 개발을 담당했던 손보익 사장이 현재 실리콘웍스 대표를 맡고 있다. 구 고문과 손 사장의 재결합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실리콘웍스에 구본준 반도체 의지 실리나, LX그룹 첨단 신사업 찾는다

▲ 손보익 실리콘웍스 대표이사 사장.


구 고문은 반도체사업에 필수인 연구개발을 강조해 온 만큼 실리콘웍스에 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LG 부회장 시절 LG그룹 연구개발거점 LG사이언스파크를 설립하며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기업이 영속하는 근본적 해법은 인재를 키우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실리콘웍스뿐 아니라 다른 LX그룹 계열사도 구 고문의 지론에 맞춰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립할 공산이 크다.

특히 LX그룹 계열사 가운데 외형이 가장 큰 LG상사는 최근 해외 시멘트사업 등 비핵심자산을 정리하며 정보통신기술분야에서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어 향후 실리콘웍스 반도체사업과 상승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LG상사는 24일 주주총회를 열고 사업목적에 전자상거래, 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중개업, 소프트웨어·플랫폼·모바일앱 개발·운영·판매업, 데이터베이스 및 온라인정보 제공업 등을 추가한다.

투자자들은 LX그룹 출범을 앞두고 구 고문의 리더십에 관한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웍스 LG상사 LG하우시스 LGMMA 등 LX그룹 계열사 시가총액은 기존에는 2조3천억 원 규모였는데 LG그룹에서 분할이 발표된 뒤 18일 종가 기준 3조 원으로 33% 이상 늘었다.

시장에서는 LX그룹을 떠나보내는 LG그룹 역시 순조롭게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그룹 규모는 이전보다 소폭 작아지더라도 자동차 전자장비(전장)와 배터리 등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LG는 최근 실적발표를 통해 ESG, 바이오, 디지털헬스케어 등을 중심으로 투자대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LG그룹의 분할은 가문의 계열분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