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위기에 놓인 조폐공사를 구하기 위한 새 성장동력 찾기에 나섰다.
조폐공사는 그동안 화폐제조 감소에 따른 실적 악화를 여권 발급, 메달 판매, 모바일 지역상품권 발행 등으로 방어해 왔지만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여권 발급량이 급감하면서 실적이 크게 악화했다.
▲ 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8일 대전에 위치한 조폐공사 본사에서 경영전략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
특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조폐공사로서는 새 먹거리를 찾지 못하면 존폐위기까지 놓일 수 있다.
11일 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년 만에 적자를 보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고 새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조폐공사는 2020년 매출 5317억 원을 냈다. 2019년보다 매출은 1.3% 늘었다.
하지만 영업손실 142억 원을 봐 적자로 돌아서면서 6년 동안 써왔던 최고기록 행진에 제동이 걸렸다.
조폐공사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동안 매출과 영업이익이 해마다 늘면서 최고기록을 매번 다시썼다. 2019년에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각각 5천억 원, 100억 원을 넘겼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이 악화한 가장 큰 이유는 여권 발행 감소”라며 “코로나19로 여권 발행이 급감하면서 1년 전보다 70% 이상 줄었다”고 설명했다.
조폐공사의 여권 발행건수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488만 권, 465만 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여권 발행건수가 104만 권에 그쳤다.
지난해 금값이 뛰면서 메달 해외판매를 위해 계약을 맺었던 업체가 손실을 내 조폐공사가 관련 대금을 받지 못한 것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
조폐공사의 본래 주업무는 화폐제조다. 하지만 신용카드와 모바일결제 등을 통한 결제가 확산하자 여권 발급과 기념메달 판매,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 등 신사업 비중을 높여 위기에 대응해 왔다.
조폐공사의 전통적 사업인 화폐제조사업의 매출은 2007년 전체 매출의 62%를 차지했지만 2019년에는 21%로 낮아졌다.
반면 2019년 여권 발급과 메달 판매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0%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조폐공사가 화폐제조사업을 대신하기 위해 도입한 먹거리마저도 어려워지면서 조폐공사의 실적 개선에 먹구름이 꼈다.
세계적으로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CBDC)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도 조폐공사로서는 달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가 확대되면 조폐공사의 본래 업무인 화폐제조 기능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는 블록체인 등 기술을 통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하는 화폐지만 국가가 보증하는 화폐이기 때문에 일반화폐와 같이 가치변동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실시간으로 가치가 달라지는 가상화폐와는 차이가 있다.
이미 중국과 유럽은 디지털화폐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디지털화폐연구팀을 만들어 관련 출허를 특허하는 등 디지털화폐 도입을 준비했으며 올해는 선전과 베이징, 청두 시민들에게 디지털위안화를 시범적으로 배포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서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릭스뱅크도 유럽 최초로 지난해 디지털화폐를 시범적으로 발행했다. 중국과 유럽이 디지털화폐 발행에서 앞서나가자 미국도 디지털화폐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조폐공사의 전체 매출에서 화폐제조를 통한 비중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조폐공사를 설립한 목적이 되는 상징적 사업인 만큼 이와 관련된 새 먹거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조폐공사는 존폐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
▲ 조폐공사가 2월 내놓은 '근초고왕 카드형 골드' 메달 이미지. <한국조폐공사> |
조폐공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확대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폐공사는 2018년 12월 4차산업 기술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상품권 통합관리서비스 ‘착(chak)’을 만들고 2019년부터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지역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 서비스를 통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시중은행과 경쟁도 불가피하다. 시중은행은 이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비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앞서가고 있다.
신한은행은 LGCNS와 함께 8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시범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보였다. 다른 은행들도 한국은행의 디지털화폐에 대비한 시스템 마련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장식 조폐공사 사장은 조폐공사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고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한 전담조직을 꾸렸다.
조폐공사는 이를 위해 미래성장, 인적자원(HR), 사업고도화, 불리온(메달), 글로벌, 기술발전 등 모두 6개의 비상경영 태스크포트(TF)를 꾸렸다.
반장식 사장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조폐공사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경영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