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이어 SK하이닉스까지 극자외선(EUV) 공정에 뛰어들면서 극자외선 노광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극자외선 공정 진입의 후보로 꼽히던 중국 SMIC는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어 극자외선 노광장비 등 첨단 기술에 관한 접근이 막혀 있다. ‘극자외선 공정 경쟁 3파전’ 구도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극자외선 공정 경쟁 3파전, 중국은 밀려나

▲ 2월 준공된 SK하이닉스 이천 M16공장. 극자외선(EUV) 기술을 기반으로 차세대 D램을 생산한다. < SK하이닉스 >


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반도체기업 가운데 네덜란드 ASML로부터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구매해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등 3곳뿐으로 파악된다.

노광공정은 빛을 이용해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공정을 말한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사용하면 기존 광원보다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통해 훨씬 미세한 반도체 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 

반도체는 회로가 가늘어질수록 전력 효율과 성능 등이 개선된다. 현재는 반도체 회로폭이 나노(nm) 단위까지 미세화하고 있는데 5나노 이하 미세공정에서는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수다. 

이처럼 중요한 장비지만 접근성은 높지 않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ASML이 독점적으로 만드는데 지난해 31대만 판매됐고 올해 판매 목표치는 45~50대 수준이다. 가격도 비싸 대당 2천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시장에 풀린 극자외선 노광장비 대부분은 삼성전자와 TSMC가 보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유안타증권이 조사한 극자외선 노광장비 보유현황을 보면 2020년 기준 TSMC 37대, 삼성전자 17대, 인텔 13대, SK하이닉스 2대, 마이크론 1대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파운드리분야 1위 TSMC와 2위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사이 극자외선 노광공정을 바탕으로 파운드리 기술 경쟁을 벌여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파운드리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고객이 주문하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다. 

애플과 퀄컴, AMD, 엔비디아 등 세계적 반도체기업들이 요구하는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보유한 장비 규모가 곧 실적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4분기 TSMC의 극자외선 기반 5나노급 공정은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3분기 처음으로 실적에 반영된 뒤 한 분기만에 매출을 대폭 끌어올린 것이다. TSMC와 삼성전자가 눈에 불을 켜고 가장 많은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선점한 이유다.

여기에 최근 SK하이닉스도 극자외선 노광장비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극자외선 노광공정은 애초 시스템반도체 쪽에서 사용됐지만 요사이에는 메모리반도체, 특히 D램 분야로도 적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부터 극자외선 기술을 기반으로 4세대 10나노급(1a) D램 양산을 시작하고 앞으로 극자외선 활용도를 더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ASML과 극자외선 노광장비 공급계약을 맺고 2025년까지 4조7500억 원을 투입한다고 2월 밝혔다. 

장비 가격을 고려하면 5년 동안 20대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셈이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것보다 더 큰 규모다.

삼성전자와 TSMC, SK하이닉스가 이처럼 극자외선 노광장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과 비교해 다른 반도체기업들은 좀처럼 ‘극자외선 진영’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는 것에 따른 투자 및 기술력 부담이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극자외선 공정 경쟁 3파전, 중국은 밀려나

▲ ASML 직원들이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최종 조립하고 있다. < ASML >

대만 UM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등 상위권 파운드리기업들은 일찌감치 7나노 이하 미세공정 진입을 포기한 만큼 굳이 비싸고 기술적 난도가 높은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

인텔은 삼성전자처럼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함께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 극자외선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극자외선 기술 적용이 예정된 7나노급 공정의 상용화가 계속 지연되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양산체제를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2022년 말에서 2023년 초가 돼야 7나노급 공정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메모리반도체 쪽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외에 극자외선 노광장비 도입을 추진하는 기업은 드물다. D램시장 3위를 차지한 마이크론조차 연구용으로 1대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장비 확보에 소극적이다.

다만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는 중국에서는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1위 파운드리기업 SMIC는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해서 ASML과 접촉했던 터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최초 극자외선 기술 상용화가 유력했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SMIC 등 중국 기업에게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영국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트럼프 정부시절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뒤부터 네덜란드 정부에 압력을 넣어 중국 기업의 극자외선 노광장비 구매를 막고 있다.

최근에는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머지않아 중국으로 갈 수 있다는 시선이 반도체업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SMIC가 ASML과 맺었던 반도체장비 공급계약 기간을 애초 2020년 말까지에서 올해 말까지로 연장했다고 3일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중국에 관한 반도체 제재가 완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ASML은 SMIC의 발표 직후 이 계약이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아닌 기존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대상으로 한다며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