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관리하지 못하면 엄청난 경영 리스크에 직면하는 시대에 정 사장이 관리해야 할 리스크는 넓고도 깊다.
19일 정관계에 따르면 22일 열리는 산업재해 관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정 사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을 공산이 크다.
LG디스플레이는 청문회에 오르는 9개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최근 산업재해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8일 롯데글로벌로지스, 쿠팡풀필먼트, 포스코, 포스코건설,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GS건설, CJ대한통운, LG디스플레이 등 9개 기업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LG디스플레이를 제외한 다른 기업에서는 사망사고가 잦았다. 지난해 현대건설에서 7명, GS건설에서 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쿠팡, CJ대한통운도 사망사고를 겪었다.
특히 지난해 11월과 12월에 걸쳐 5명이 사망한 포스코의 최정우 회장은 허리 통증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청문회 개최 전부터 정계에서 눈총이 곱지 않다.
이와 비교해 최근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유출사고는 부상자 6명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정 사장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LG디스플레이는 청문회 참석기업 가운데 하나뿐인 반도체·디스플레이기업이다. 정 사장이 업계를 대표해 안전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정 사장은 LG그룹에서 재무관리능력으로 한 손에 꼽힌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LG화학 등 주요 LG그룹 계열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을 정도다.
정 사장의 역량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더욱 돋보인다. LG디스플레이가 2019년 1조3600억 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를 내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투입돼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이후 LG디스플레이는 나날이 실적 개선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 적자규모는 291억 원에 불과했다. 올해는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사장은 이제 안전경영에 관한 리스크 관리능력도 증명해야 한다.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안전이 기업경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떠올라서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법인은 중대재해로 인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징역이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이 지금까지 LG디스플레이 등에서 발생했던 산업재해에 관해 소급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년 뒤부터는 피할 수 없다.
기업의 안전 미비는 단지 노동자 개개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경제적 타격이나 경영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앞서 1월13일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에서는 화학물질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 유출사고로 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 사장은 사과문을 내고 “이번 사고 발생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고원인 조사, 재발 방지대책 등 제반 조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사과문에서 말했던 산업재해 예방조치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LG디스플레이의 안전관리능력에 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경영은 최근 LG그룹 내부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꼽힌다.
지난해 5월 LG화학 국내외 사업장에서 연달아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LG화학 충남 대산 공장 사고현장을 찾아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경영실적이 나빠져서가 아니다”며 “안전환경, 품질사고 등 위기관리에 실패했을 때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12월 LG그룹 최고경영진 간담회에서 “내 가족이 일하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사장단부터 안전에 솔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