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1-02-08 1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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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체제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기싸움을 이어간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분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에서 반도체공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 삼성전자 오스틴 파운드리공장.
바이든 대통령이 내세운 중국과 경쟁기조에 힘을 실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8일 미국 CNBC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했던 방식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면서도 “미국과 중국은 갈등이 필요하지 않지만 극심한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극심한 경쟁’은 단순히 관세 등으로 충돌이 잦은 무역 분야에만 한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미국에 안보뿐 아니라 산업 구조적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자급을 추진하기 위해 ‘중국 제조2025’ 전략을 세워 중국 반도체기업에 금전적, 정책적 지원을 제공해 왔다. 중국 제조2025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반도체산업은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만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도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 시장 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 반도체 자급률 19.4%에 그쳐 세계 전체 생산규모의 7.5%를 차지하는 데 머무를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미국 쪽에서 보면 중국의 반도체 육성정책 효과가 초라하다고 해도 방심할 수 없다. 미국 역시 국력에 비해 자체 반도체 생산기반이 크지 않아서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 분석을 보면 2019년 기준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2.5%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대만·중국 등 아시아 지역은 무려 80%가량의 생산능력을 점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최근 중국 반도체굴기를 견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트럼프 정부는 중국 대표적 IT기업 화웨이, 중국 파운드리 1위 기업 SMIC 등을 상대로 반도체 수급 및 개발을 제한하는 여러 제재안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중국을 제재하는 것 못지않게 미국 땅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지난해 6월 내놓은 ‘2020년 미국 반도체산업’ 보고서에서 “미국의 팹리스는 이제 거의 전적으로 아시아 기업들에 7나노급 이하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며 “오늘날과 같은 지정학적 환경에서 미국은 국내 반도체 제조를 장려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국이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할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여부에 미국 정관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 생산법인을 중심으로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공장 증설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틴뿐 아니라 뉴욕 제네시카운티, 애리조나 피닉스 등 다른 지역도 투자지역으로 오르내린다.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와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방정부 등과 세금 감면 등 지원책을 놓고 논의를 주고받았다는 현지언론 보도가 나온다.
중국과 경쟁을 선언한 바이든 정부로서는 삼성전자의 신규투자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특히 대만 파운드리기업 TSMC와 비교했을 때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 연도 및 지역별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 미국의 점유율은 10% 초반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
이에 앞서 TSMC가 애리조나에 2024년까지 새 반도체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트럼프 정부시절 발표된 내용이다. TSMC의 투자 규모는 120억 달러 수준으로 삼성전자의 투자 전망치보다 작기도 하다.
미국에 짓는 새 반도체공장의 공정 수준에서도 삼성전자가 TSMC를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블룸버그 등 외국언론은 삼성전자가 신규 반도체공장에서 3나노급 공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반면 TSMC는 새 공장에서 5나노급 공정 도입을 목표로 잡았다.
나노(nm)는 반도체 회로 폭을 말한다. 반도체는 회로 폭이 가늘어질수록 성능과 전력 효율성이 향상된다. 삼성전자와 TSMC는 2022년 3나노급 반도체 양산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포브스는 싱크탱크 미국번영연합의 마크 파스토 부회장을 인용해 “TSMC가 애리조나에서 가장 진보된 반도체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며 “TSMC 애리조나 공장은 미국이 중국에 계속 앞서도록 돕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를 확정짓기 위해 반도체기업에 관한 지원방안을 확대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에서 지난해 ‘반도체 생산을 위한 인센티브 창출(CHIPS)’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법은 아직 의결되지 않았다.
삼성전자도 미국 투자를 놓고 여러 장소를 고민하되 투자 자체는 단행할 공산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TSMC를 상대로 미국 고객사의 반도체 수주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현지에 공장을 두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계 파운드리 1위인 TSMC를 상대로 파운드리사업 주도권을 뺏아와야 한다.
TSMC는 애플, AMD,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등 여러 미국 기업과 단단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막대한 반도체 일감을 수주해 왔다. 최근 애리조나 공장 건설 등 친미국적 행보를 통해 이런 협력이 더욱 굳건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TSMC 매출에서 북미 비중은 2019년 4분기 59%였는데 지난해 4분기에는 73%를 보였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대규모 파운드리 증설은 2021년 삼성전자 주가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줄 요인”라며 ”TSMC와 격차를 좁히고 미국 고객사와 관계를 공고히 하려면 삼성전자도 오스틴에 증설하는 것이 고객사 확보나 주가 측면에서 긍정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