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1-01-14 14: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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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대만 TSMC와 손잡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을 확대한다.
외부 기업을 통해 최신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생산능력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산기술을 발전시킬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 인텔(왼쪽)과 TSMC 로고.
14일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인텔은 올해 하반기 TSMC 5나노급 공정을 통해 보급형 코어 i3 중앙처리장치(CPU)를 위탁생산하기로 했다.
2022년 하반기에는 중급 및 최상위 CPU를 TSMC 3나노급 공정에서 양산할 것으로 전망됐다.
인텔은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삼성전자처럼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한다. 해마다 삼성전자와 반도체기업 매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인텔의 주력제품은 가장 널리 쓰이는 시스템반도체 중 하나인 CPU다. 시장 조사업체 머큐리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기준 인텔은 세계 PC용 CPU의 80%, 서버용 CPU의 94%를 차지했다.
인텔은 이전에도 일부 반도체를 위탁생산해 왔지만 CPU에 관해서는 자체생산을 고집했다. 최근까지 CPU를 제외한 반도체의 15~20%만을 TSMC와 UMC 등 파운드리기업에 맡겼던 것으로 파악된다.
인텔이 CPU 생산도 외부에 맡기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꾼 이유는 10나노급 이하 반도체 미세공정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텔은 기존 14나노급 공정을 10나노급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을 안정화하는 데 실패해 2018년 말부터 2019년까지 세계적으로 CPU 공급부족 대란을 일으켰다.
이에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020년 7월 외부 파운드리에 반도체 생산을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TSMC는 반도체 생산능력과 기술력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인텔의 CPU 생산을 위한 파트너로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
TSMC는 현재 세계 파운드리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10나노급 이하 반도체 미세공정을 제공하는 파운드리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두 곳뿐이다.
다만 인텔이 TSMC 등 파운드리기업만을 믿고 CPU를 비롯한 모든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형태로 사업구조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반도체업계의 중론이다.
인텔은 2022년 하반기~2023년 상반기 도입을 목표로 자체 7나노급 공정 로드맵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반도체 자체생산에 관한 의지가 뚜렷한 것이다.
인텔 경영진도 기술 발전에 속도를 내기 적합한 인재로 교체된다. 재무전문가인 밥 스완 CEO가 2월15일부로 물러나고 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는 인텔이 TSMC나 삼성전자 등에 뒤진 미세공정 기술력을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 팻 겔싱어 인텔 CEO 내정자.
미국 블룸버그는 “애플은 인텔을 버리고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아마존과 알파벳 등 다른 반도체 고객사들도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개발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며 “겔싱어 CEO 임명은 인텔이 기술적 리더십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바라봤다.
TSMC가 인텔의 막대한 반도체 물량을 모두 소화하기도 어렵다. 이미 애플, 브로드컴, AMD, 미디어텍 등 대형 반도체 고객사들이 TSMC의 생산능력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텔은 기존 CPU에 더해 외장형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신사업에도 뛰어들고 있는 만큼 파운드리기업에만 의존하면 비대면산업의 발달로 급격히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GPU, 자동차용 반도체 등의 공급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며 “GPU를 생산하는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가동률이 100%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이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처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전면적 파운드리 체제가 제한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인텔은 미국, 이스라엘, 중국, 말레이시아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15곳에 이르는 반도체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인텔이 앞으로도 종합반도체기업체제를 유지하되 파운드리기업과 협력을 통해 더욱 유연한 생산체계를 갖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허지수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텔의 상대적 공정기술 열세가 명확해진 상황에서 무리한 최신 공정 전환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순수 파운드리업체에 생산을 외주하고 칩 설계에 집중하는 것이 전략적이다”며 “다만 인텔의 기존 10나노급 공정이 TSMC에 비견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생산공장을 매각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