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현대제철 노조에 따르면 회사가 노조에게 내놨던 2020년 임단협 제시안이 현대자동차그룹의 이른바 '양재동 가이드라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은 현대차그룹이 내부적으로 설정한 계열사 임단협 지침인 양재동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양재동 가이드라인은 현대차 임단협을 기준으로 철강계열사가 90%, 철도와 대형부품사가 80%, 중소형 계열사가 70% 수준에서 같은 해 임금안이나 단체협약안을 마련한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다른 계열사에서 현대차 노사협상이 끝나기 전에 임단협을 마무리한 사례가 없기도 하다.
현대제철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내놓은 2020년도 임단협 제시안이 최소 밀고당길 여지가 있어야 협상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하는데 터무니 없는 안을 들고와서 더 이상 제시안이 없다고 해서 파업을 결정하게 됐다"며 "회사 제시안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맞춰왔던 현대차에서 합의된 내용의 90% 수준도 안될뿐 아니라 협력업체 노조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자주적으로 제시안을 들고 협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양재동 가이드라인을 그룹에서 팩스로 보내주면 그걸 그냥 들고 온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현대제철 노조는 현재 호봉승급분을 제외한 기본급 12만304원 인상을 포함해 생활안정지원금 300% 지급, 노동지원격려금 500만 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임단협이 2020년으로 넘어가면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기본급 인상률을 낮추는 데 합의했던 만큼 2020년 임단협에선 보전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반면 현대제철은 임금 정기인상분을 동결하는 대신 경영 정상화 추진 격려금 100%와 위기극복 특별격려금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현대차 노사는 2020년 최종 임금안으로 기본급 동결, 성과금 150% 지급, 코로나19 위기 극복 격려금 120만 원 지급, 우리사주 10주 지급,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0만 원 지급 등을 합의했다.
기본급이 동결된 내용을 뼈대로 하는 현대차 합의안을 고려할 때 안 사장으로서는 2020년 임단협에서 노조 눈높이에 맞는 임금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파업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현대제철 노사는 2020년 임단협을 위해 지난해 7월 이후 15차례 만났지만 아직까지 임금을 포함해 단체협약 등에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현대제철 노사가 현재 가장 큰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곳은 기본급 인상 여부지만 현대제철의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어 이를 대신할 만한 일시금 지급방안 등도 안 사장으로선 꺼내들기가 쉽지 않다.
현대제철은 2019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3313억 원을 거뒀다. 2018년보다 67.71% 급감했다.
2020년도 영업이익도 2019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정보회사 fn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20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1131억 원을 낸 것으로 추산됐다. 2019년보다 65.9%나 줄어드는 것이다.
현대제철 노사가 통상임금 의견일치안을 언제 다시 협상하는 지를 놓고 생각의 차이가 큰 점도 임단협 타결을 장기화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통상임금 의견일치안은 상여금을 얼마나 통상시급에 반영하는 지를 노사가 합의해 미래 임금체계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가운데 통상임금 의견일치안을 유일하게 타결하지 못했다.
현대제철 노조 다른 관계자는 "2020년 임단협 타결이 해를 넘긴 것은 통상임금 문제를 우선 해결하라는 그룹의 지침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그렇지 않다면 파업을 하겠다는 노조한테 연장근무나 특근 등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한 공문을 보낼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에 앞서 6일 현대제철은 5개 지회에 연장근무를 통제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은 `통상임금 리스크 최소화조치 시행`이라는 이름으로 상주 근무자의 기본 연장근로를 폐지하고 교대근무 및 상주근무자의 불필요한 특근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가운데 2020년도 임단협도 타결하지 못한 곳은 현대제철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안 사장이 2020년 임단협과 통상임금 협상을 함께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대제철 노사가 통상임금과 관련한 눈높이가 달라 번번히 통상임금 의견일치안을 둔 조합원 찬반투표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현대제철의 인건비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만큼 안 사장으로서는 빠르게 통상임금 관련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노조는 15일 회사와 벌이는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해 법원 2심 판결이 나오는 만큼 임단협부터 먼저 해결한 뒤 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의견일치안 관련 협상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내부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노조는 2020년 5월에 조합원을 대상으로 임금제도 개선위원회의 통상임금 의견일치안의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률이 24.57%에 그쳐 부결됐다. 이후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5개 지회와 개별교섭으로 전환했지만 현재 순천을 제외하고 모두 부결됐다.
2020년 임단협 협상 장기화에 현대제철 노조 5개 지회 간부들은 12일부터 15일까지 72시간 동안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협정근무자를 제외한 노조원 4200여 명은 13일 오전 7시부터 15일 오전 7시까지 48시간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노조 또다른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을 결정하는 것은 협상에서 최후의 수단이다"며 "1차 총파업 이후 쟁의행위와 관련해 계획은 아직 없지만 회사와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추후 파업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제철 관계자는 "노조의 파업 추진과 관련해 별도로 내놓을 말이 없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