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사와 조선사의 2021년 상반기 선박용 후판(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 협상에서 누가 웃을까?
반기마다 진행되는 협상에서 가격을 낮추거나 동결하고 싶은 조선사와 올리고 싶은 철강사의 신경전이 반복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의 협상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철강사업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글로벌 철강시황 분석기관 마이스틸(MySteel)이 집계한 12월 둘째 주(7~11일) 철광석 평균 가격은 톤당 159달러다. 2019년 평균가격인 94달러보다 69.7% 급등했다.
철광석 가격은 2018년까지만 해도 톤당 70~80달러를 넘나들었다. 브라질 발레(Vale)와 호주 리오틴토(Rio Tinto) 등 글로벌 1, 2위 광산회사가 자연재해로 생산에 타격을 입었던 2019년에도 100달러를 쉽사리 넘지 못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주요 광산회사들이 생산에 차질을 겪어 2020년 4분기와 2021년의 철강 생산계획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최대 철강시장인 중국에서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회복돼 철광석 수요가 급증하면서 철광석 수급 상황이 더욱 빠듯해지고 있다.
철강제품의 제조원가 가운데 철광석을 포함한 원재료 비용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고로제철소들은 현재 극도의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치(컨센서스)를 종합해보면 포스코는 2020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2조3555억 원을, 현대제철은 1139억 원을 각각 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보다 각각 39.1%, 65.6% 줄어드는 것이다.
포스코의 이익 감소폭이 비교적 작은 것은 연결기준 실적에 반영되는 비철강 계열사들이 어느 정도 이익을 보전했기 때문이다. 포스코도 별도기준으로 보면 올해 영업이익 1조1030억 원을 거둬 2019년보다 57.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철강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 선박용 후판 가격 협상에서 조선업계를 상대로 가격 인상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철강회사들은 2020년 하반기 수익성이 악화하는 가운데서도 후판 계약가격을 톤당 3만 원 내리는 데 합의하기까지 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후판 가격 협상이 한 쪽의 논리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철강사들은 하반기의 가격 인하로 조선업계가 주장하는 ‘고통분담’을 충분히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2021년에도 고통분담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코로나19로 선박 발주량이 급감해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3사가 모두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3사 가운데 2020년 11월 말 기준으로 수주목표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조선사는 대우조선해양인데 그나마 달성률이 56.3%에 그친다. 올해 국내 조선사들 가운데 수주목표를 달성한 조선사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조선해양은 선박 발주시장의 침체에 올해 수주목표를 기존 157억 달러에서 111억 달러로 낮추기까지 했다.
조선사의 수주는 곧 미래의 실적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실적 측면에서 아직 후판 가격 상승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후판은 선박 건조비용의 20~30%를 차지한다. 인건비와 기타 원재료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조선업의 특성상 후판 가격이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조선사들은 내년 상반기의 후판 가격 협상에서 중국산 후판의 수입을 늘리겠다는 카드로 철강사들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은 한국산보다 가격이 저렴한데 품질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며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익성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