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현대차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와 관련해 주목할 점 가운데 하나로 현대글로비스가 인수에 참여했다는 점이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대규모 외부투자를 진행할 때 현대차, 현대모비스와 함께 기아차가 참여했다.
자율주행업체 ‘모셔널’을 비롯해 모빌리티서비스업체 싱가포르 ‘그랩’, 인도 ‘올라’ 등의 투자에도 모두 기아차가 함께했다.
기아차는 현대차와 사업 포트폴리오가 비슷할 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에서 자산, 매출 등 외형이 현대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계열사인 만큼 대규모 투자를 향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아차는 3분기 말 개별기준으로 1조2618억 원 규모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가 개별기준으로 보유한 현금성자산 5272억 원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차 대신 현대글로비스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에 참여한 것은 미래 물류사업 확대를 향한 정 회장의 의지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스마트모빌리티 솔루션그룹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물류를 이동하는 서비스사업이 포함된다.
미래 모빌리티시대에는 하늘 길이 열리는 만큼 이를 이용해 물류시장을 혁신하겠다는 것인데 그 중심에는 정 회장이 미래사업으로 힘주는 도심항공 모빌리티(UAM)가 있다.
신재원 현대차 UMA(도심항공 모빌리티)사업부장 부사장은 10일 진행한 ‘CEO인베스터데이’에서 “UAM사업부의 첫 번째 전략은 승객과 화물분야 모두에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시장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2026년 화물용 무인항공시스템(UAS)을 먼저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심항공 모빌리티만으로는 물류서비스사업을 완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무인항공기로 물류를 옮긴다 해도 마지막 소비자 집 앞까지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 역할을 별도의 배송로봇이 맡을 것으로 보는데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차그룹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배송로봇은 집 앞 장애물을 넘고 계단 등도 오르내려야 해 사람이나 동물과 유사한 ‘레그타입로봇(Leg Type Robot)’이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레그타입로봇은 디딤 발과 딛는 발의 높이 변화 등에 따라 로봇 다리에 들어가는 힘과 압력 등을 다르게 줘야 해 바퀴로 움직이는 휠타입로봇과 비교해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로봇 개 ‘스폿과 사람 형태 로봇인 '아틀라스'를 개발하는 등 레그타입로봇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로 평가된다.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 단숨에 배송로봇과 관련한 가장 앞선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인데 현대글로비스는 이를 통해 관련 사업 경쟁력을 빠르게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물류를 책임지는 계열사로 내년 상반기 이전하는 신사옥에 물류 로봇서비스를 시범 적용하는 등 로봇을 미래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B2B(기업 사이 거래)사업에서 벗어나 B2C(기업과 소비자 사이 거래)사업으로 영역을 지속해서 확장하고 있는 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 '아틀라스'.
현대글로비스가 로봇사업을 강화하는 일은 기업가치 확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지분 기준이 기존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강화하면서 시장에서는 정 회장이 이른 시일 안에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일정 부분 처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로 현재 정몽구 명예회장과 함께 지분 29.99%를 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 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손에 쥐는 돈이 늘어나는 만큼 정 회장 입장에서는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가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은 11일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결정하며 시장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물류로봇시장에 우선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에 참여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로봇 중심의 사업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해 모빌리티분야를 넘어 모든 산업분야, 고객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 현대차그룹의 가치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