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전지사업본부)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이는 배터리 소송의 판결이 또 미뤄졌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도 소송의 장기화는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10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과 관련한 판결을 2021년 2월10일 내린다고 발표했다.
애초 정해진 판결 날짜는 10일이었다. 판결을 하루 앞두고 2개월이 미뤄진 것인데 이번으로 3번째 연기다.
배터리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점을 모색할 시간이 더 주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SK이노베이션이 합의에 더 급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도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재판에서 우위에 서 있기는 하지만 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소송 당사자인 두 회사의 차원을 넘어 LG그룹과 SK그룹이 미래를 걸고 육성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번 소송과 관련한 사안의 의사결정권은
김종현 사장을 넘어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혹은 그 윗선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9월 누적 기준으로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시장에서 점유율 6위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배터리 사용량은 2.3배 급증했고 순위도 3계단 뛰었다.
LG그룹이 합의 대신 강공을 선택해 SK이노베이션의 기세를 꺾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김 사장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계획을 내놓을 때부터 공격적 배터리 투자를 위해 상장 전 지분투자(Pre-IPO)와 기업공개 등 지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자본유치를 내세웠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능력을 올해 120GWh에서 2023년 260GWh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10조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배터리업계는 바라본다.
김 사장은 투자재원 마련 작업을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번 재판의 결과는 함께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특허 침해소송뿐만 아니라 아직 시작되지 않은 특허 무효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일반적으로 특허분쟁에서는 특허 침해소송의 승자가 판결을 들고 상대방의 특허를 무효화하는 소송을 추가로 낸다.
이 소송들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패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이는 김 사장의 기업가치 높이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소송에 들어가는 실질적 비용도 김 사장으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양측 모두 정확한 비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으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변호사 비용으로만 한 달에 100억 원을 쓰고 있다는 추산도 있다.
LG화학이 소송의 당사자였을 때는 석유화학사업본부가 현금 창출원(캐시카우) 역할을 해 비용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은 다르다. LG화학 전지사업본부는 올해 2분기가 돼서야 흑자기조를 수립했고 이익 창출능력은 분기별 1500억 원 안팎으로 아직 크다고 볼 수 없다.
LG그룹에게 국제무역위원회가 판결을 미룬 2개월은 SK이노베이션의 합의 시도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검토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파악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판결 일정의 연기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 성실하고 단호하게 소송에 임하겠다”면서도 “경쟁사(SK이노베이션)가 진정성을 지니고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