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2000년 취임 이후 한번도 대량 인원감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보생명이 이달 초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혀 보험업계를 놀라게 했다.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은 되도록 모든 인력을 안고 가는 문화였다”고 말했다.
이번 구조조정 결정은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위험을 줄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신 회장의 경영방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평소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라며 “금융회사는 사람보다 건강(리스크)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창재의 ‘내실경영’이 만든 교보생명의 성장과 한계
교보생명은 내실있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교보생명은 총자산 78조5711억 원의 생명보험업계 3위 기업이다. 2012년보다 자산을 3조 원 이상 늘리며 건실한 재무구조를 보여 줬다. 지난해 회계연도(4~12월) 기준으로 교보생명은 총매출 10조178억 원과 영업이익 5814억 원을 냈다. 그 전해보다는 영업이익이 줄었지만 시장상황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교보생명은 안정중심 경영을 펼쳐왔다. 신 회장의 아버지인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신용호 창업주가 1958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교보생명은 주로 보험 관련 사업에만 집중했다. 신용호 창업주가 보험 외 분야에 진출한 것은 딱 세 번이다. 1980년대에 세운 부동산 관리회사 교보리얼코와 서적 판매사 교보문고, 1994년 대한증권을 인수해 만든 교보증권이다.
신 회장도 보수적 행보를 유지했다. 신 회장 경영 10년 동안 교보생명은 인수합병 시장에 끼어든 적이 없다. 교보생명 밑에 금융 계열사 6개와 비금융 계열사 6개가 있다. 이 가운데 상장한 기업은 교보증권뿐이다. 교보생명은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과 함께 생명보험시장에서 과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안정성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지난해 11월 교보생명에 신용등급 A+를 부여했다. 국내 생명보험사 중 이 등급을 받은 회사는 교보생명뿐이다.
피치는 보험사 수익성과 재무건전성, 리스크 관리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보험금지급능력(IFS)을 기준으로 해당등급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교보생명은 수익성 중심의 내실성장으로 양호한 재무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회장의 고민은 교보생명에서 더 발전할 동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업계 3위에 안착했으나 앞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생명보험시장이 경기불황으로 성장세가 꺾인 점도 신 회장을 불안하게 한다. 2011년부터 ‘매출 10조 원 클럽’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늘 10조 원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영업이익률도 6%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신 회장이 올해 초 직접 우리은행 인수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다. 그는 올해 초에 앞으로 취임 15주년을 맞는 2015년까지 교보생명을 자산 100조 원과 연간 순이익 1조 원대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우리은행 인수에 성공하면 국내 첫번째 ‘어슈어뱅크’(은행을 소유한 보험사)의 주인이 된다. 신 회장은 이를 통해 교보생명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
|
|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가운데)이 2012년 5월25일 열린 고객보장대상 시상식에서 개그맨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
◆ 의사 출신 신창재 ‘환자’ 교보생명 살리다
신 회장은 ‘2조 원’의 부자다. 교보생명은 생명보험 업계 3위이고 재계를 통틀어 43위 수준이다. 신 회장이 보유한 교보생명의 주식가치는 1조991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10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여섯 번째로 꼽힌다.
신 회장은 생명보험사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유일한 ‘오너’다. 교보생명 지분 33.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신 회장의 별명 중 하나는 ‘경영인이 되길 꺼렸던 경영인’이다. 이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2010년 5월 신 회장을 커버스토리 인물로 다루면서 붙인 말이다. 포브스는 “신 회장은 젊은 시절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았다”며 “그랬던 그가 이제는 교보생명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 회장은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에게 기업을 물려받기 전까지 회사 경영에 별 관심이 없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의료계에 몸을 담았다. 1987년부터 18년 동안 서울대 의대 교수로 일했다. 장남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신용호 창업주조차도 신 회장이 기업가 대신 의사 일을 하는 쪽이 낫다고 봤다고 한다.
그러나 신 회장은 1996년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갑작스럽게 교보생명에 들어왔다. 44세의 나이였다. 신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을 책임진 것은 2000년 회장이 된 뒤다. 교보생명은 당시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보험계약이 줄줄이 해지되면서 실적이 떨어져 2000년 254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생명보험 업계2위 자리도 대한생명(현재 한화생명)에게 내줬다.
신 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먼저 보험설계사를 4만5천 명으로 줄였다. 보험설계사 수가 너무 많아 오히려 부실 보험계약만 늘어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등기이사 25명도 전원 사표를 내게 했다. 이 가운데 5명만 자리를 지켰다. 신 회장으로서 고통스런 선택이었다. 그는 “(신용호 창업주가 임명한) 대표이사 두 명을 내보낼 때 아버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고 되돌아봤다.
신 회장의 경영을 놓고 임원들은 “산부인과 의사가 회사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갈등은 2006년 크게 터졌다. 임원 20여 명이 실적부진 책임을 지겠다며 단체로 사의를 표명했다. 금융업계는 ‘집단 항명’이라고 봤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당시 신 회장이 사석에서 경영을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신 회장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조직을 정비한 뒤 보험 영업구조를 개편하면서 매출보다 리스크 관리에 더 중점을 뒀다. 그는 “단 한 건의 부실 계약이 100건의 우량계약에서 나오는 이익을 갉아먹는 게 보험”이라며 “매출 위주 경영은 지속성장과 거리가 먼 나쁜 성장”이라고 소신을 폈다.
신 회장의 이런 경영 방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빛을 냈다. 모두가 힘들어할 때 교보생명은 3천억 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냈다. 기업 총자산은 2000년 25조 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거의 80조 원에 육박했다.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로 꼽히는 지급여력비율도 취임 당시 73.2%에서 지난해 말 292.2%로 껑충 뛰었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4년 이후 계속 1위를 유지 중이다.
신 회장도 생명보험업계의 유일한 ‘오너’ 경영자로서 명성을 쌓았다. 2010년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 보험회사 경영자 중 유일하게 금융분야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지난 4월 한 경제지의 조사 결과 신 회장은 ‘국내 보험 업계에서 가장 신뢰하는 CEO’ 1위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