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재실사를 다시 요청하며 협상이 사실상 결렬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으로 HDC그룹의 재무 안정성은 지키겠지만 정부와 시장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항공사 인수합병 등을 통해 ‘모빌티리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꿈은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KDB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에게 다시 12주 동안의 재실사를 요구하면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정 회장과 8월26일 만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7천억 원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채권단의 파격적 제안에도 정 회장이 다시 기존처럼 재실사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지원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는 만큼 HDC현대산업개발과 계약 해지를 곧 선언하고 ‘플랜B’인 채권단 관리와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을 시작할 것으로 항공업계는 보고 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정상화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 되더라도 항공업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꾸준히 나오고 있기도 하다.
정 회장으로서는 채권단의 지원으로 기존 가격의 약 70% 수준인 1조8천억 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더라도 이후 재무구조 정상화 등에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으로 HDC그룹의 재무 안정성은 지키겠지만 정부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은 부담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7월 정 회장과 따로 만날 정도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는 항공업과 건설업의 주무관청이 국토교통부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번 결정으로 정부 신뢰를 저버리게 되면서 본업인 건설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뒤 정 회장이 목표로 삼았던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을 위해 항공사 인수에 다시 나서려 하더라도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게 됐다.
항공사를 인수합병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국토교통부로부터 운수권을 확보해야 하는 등 사실상 모든 절차에서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HDC그룹이 항만사업을 하는 만큼 육상, 해상, 항공 등을 확장하며 모빌리티그룹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좀 더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HDC그룹의 미래로 모빌리티 그룹을 제시했다.
정 회장으로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 무산 이후 본업인 건설업에서 내실을 다지며 다른 방향으로 HDC그룹을 키울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지급한 계약금 2500억 원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이 그동안 해 온 재실사 요구는 시장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있다는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계약금 반환소송을 대비한 명분쌓기였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금융업계는 보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향후 계획에 말을 아끼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감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