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계열사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사용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화웨이 장비를 계속 쓰자니 미국의 압박이 강하고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자니 중국의 후환도 걱정된다. 미국 정부에서 LG를 콕 집어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부는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며 손 놓고 있어 대처에 부담도 크다.
 
[오늘Who] 구광모 딜레마, LG그룹 '화웨이 리스크' 고스란히 떠안아

▲ 구광모 LG그룹 회장.


24일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 화웨이 장비 사용과 관련해 논란이 확산되면서 LG그룹의 대응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논란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2018년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결정한 뒤 지속적으로 보안 우려가 제기돼 왔다. 사실상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리스크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문제를 회피하기 어렵게 됐다. 올해 들어 미국이 화웨이 제재를 더욱 강화한데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LG유플러스를 향해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국가 사이 정치적 문제로 부각된 만큼 LG유플러스 개별기업이 대응하기는 어렵다. 구 회장이 그룹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LG그룹의 사업구조상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편에 서기는 쉽지가 않다. 주력계열사들만 보더라도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시장이 더 중요하다고 잘라 말하기 힘들다. 구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그룹 내 매출 1위인 LG전자는 2019년 기준 북미지역 매출비중이 25.0%에 이른다. 북미 매출이 중국 매출의 여섯 배가 넘는다.

반면 그룹 내 매출 2위 LG화학은 2019년 중국 매출비중이 33.8%로 가장 컸다. 중국 매출이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다른 주력계열사 LG디스플레이의 쏠림 정도는 더욱 심하다. 2019년 중국 매출비중이 무려 65.7%였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광저우 올레드 공장 양산을 시작하고 중국시장 공략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광저우 공장 양산은 적자를 빠져나올 돌파구로 여겨지고 있는데 화웨이 사태의 유탄을 맞는다면 실적 개선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압력을 무시하자니 미국 내에서 LG그룹 계열사들이 추진하는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떠오른다. LG그룹에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업이 없다.

LG화학은 미국에서 GM과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전기차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테슬라에도 배터리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는 전략 스마트폰 LG벨벳을 국내보다 낮은 가격으로 미국에서 출시하고 중저가 제품 출시를 늘리는 등 스마트폰사업 반등의 기회를 북미에서 찾고 있다. 북미지역 가전 수요 역시 코로나19 속에서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구 회장은 롯데그룹이 2017년 주한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를 제공했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사이 문제가 기업으로 불똥이 튄 대표적 사례다.

당시 롯데그룹은 중국이 배치를 반대하는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롯데마트 영업정지, 제품 통관 중단 등의 보복조치를 겪었다. 롯데그룹은 중국사업 실적 악화가 겹치면서 중국에서 롯데마트를 철수했다.

구 회장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태도다. 영국과 호주 등은 정부 차원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는 내용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며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23일 “민간부문의 장비 도입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논란에 선을 그었다.

정부가 정책방향을 정하면 기업은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정부 결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명분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그만큼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커진다. 자칫하면 정부 결정에 따라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보다 더 큰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가 사이의 정치적 갈등상황에서 일반기업이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