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하나의 롯데’를 지킬 수 있을까?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상대로 전방위적으로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신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모두 차지하려는 데 대해 최소한 일본 롯데그룹은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재계에서 벌어진 형제의 경영권 분쟁을 보면 그룹 모두를 차지한 사례는 드물었다. 격렬하게 분쟁을 벌이다 적당한 선에서 그룹을 분할해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동빈 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을 ‘독식’할 수 있을까?
◆ 한화-빙그레 나눈 김승연-김호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은 상속분쟁 끝에 그룹을 나눈 대표적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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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 |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198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김승연 회장이 한화그룹을 물려받았다. 김호연 전 회장은 한화그룹이 1970년대 인수한 빙그레(대일유업) 경영을 맡았다.
김 회장이 1989년 김 전 회장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면서 형제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김 전 회장은 한양유통과 빙그레, 경인에너지 등의 계열사를 넘겨받기로 했는데 김 회장이 재무구조가 부실한 빙그레만 남기고 나머지를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회장은 한양유통 적자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 전 회장을 물러나게 했다고 반박했다.
김 전 회장은 1992년 김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두 사람은 3년6개월 동안 30차례가 넘는 재판을 치렀다. 김종희 창업주가 유언을 남기지 않은 채 갑자기 사망해 두 사람의 상속분쟁은 어렵게 진행됐다.
형제는 1995년 모친의 칠순 때 만나 극적으로 화해했다. 김 전 회장은 재산분할 합의에 따라 소송을 취하했고 1997년 빙그레를 한화그룹에서 계열분리했다.
◆ 기나긴 소송전 치른 한진 오너 2세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도 선친 조중훈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한진그룹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상속분쟁을 벌였다.
조중훈 창업주가 2002년 사망하면서 가족들에게 따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공개된 유언장에 재산의 대부분을 조양호 회장이 거느린 인하학원과 대한항공에 넘기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회장,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등 네 형제는 2003년 원만한 유산배분을 위해 법정상속분에 따라 잔여재산을 분배하기로 합의했다. 형제들은 사업분할과 계열분리 원칙에도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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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
하지만 2005년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조양호 회장이 유언장 조작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조 창업주의 동생 조중건씨와 처남 김성배씨 이름으로 된 정석기업 주식 6만9천 주를 넘겨주기로 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차명 주식을 넘겨주고 손해배상액 3억4천만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이 이듬해 주식 보유 당사자들의 뜻에 따라 해당 주식을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에게 증여하도록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면서 소송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형제들은 2006년 면세점 납품권 이전, 2008년 부암장 기념관 건립, 2010년 김포공항 주유소 등 지속적으로 소송을 이어갔다. 이들의 소송전은 모두 마무리됐으나 이들은 여전히 사이가 소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 형제경영 오점 남긴 두산
두산그룹은 형제경영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 이상의 아픔을 겪었다. 경영분쟁 과정에서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라 형제경영 원칙 아래 경영권을 승계해 왔다. 박 초대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이 1981년부터 회사를 이끌었고 1996년부터 차남 박용오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박용오 회장은 OB맥주 등 소비재사업을 주력으로 삼던 두산그룹을 중공업 중심의 회사로 재편했다. 박용오 회장은 경영권을 이양하는 시점에서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을 계열분리해 독자적으로 경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족회의에서 이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두산그룹 경영권은 삼남인 박용성 회장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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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왼쪽)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
그러자 박용오 회장은 2005년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회장을 1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과 800억 원대 외화밀반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맞서 박용성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이 박용오 회장 경영기간 중 수천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회장은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들은 상고를 포기한 뒤 2007년 사면복권됐다. 박용오 회장은 대법원까지 항소했으나 마찬가지로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를 받았다.
박용오 회장은 2008년 중견건설사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노렸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시장이 침체돼 사업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와중에 2009년 차남 박중원 성지건설 부사장이 주가 조작혐의로 구속기소되자 박 회장은 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