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문제보다 삼성 암보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암 환우님들의 눈을 못 맞추겠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5m 철탑에서 355일 만에 내려온 뒤 한 말이다.
 
이재용 사과 뒤 달라지는 삼성, 삼성생명도 암보험 갈등 바뀌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6일 서울시 서초구 삼성전사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시민사회와 소통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삼성과 김씨 사이 분쟁은 1년을 딱 열흘 남겨두고 마무리됐다.

하지만 철탑에서 내려온 김씨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삼성생명과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모임(암환우모임)’의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1년을 넘긴 것은 물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양쪽의 '강대강' 대치상황이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 것은 최근 삼성생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암환자 모임의 집회를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데 따른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암환우모임은 삼성생명의 이런 조치에 반발해 국회로 옮겨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정치권과 여론을 활용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암환우모임 회원들은 삼성생명이 부당하게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며 2018년 말부터 서울시 서초구 삼성생명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올해 1월부터는 삼성생명 본사 2층 고객센터를 점거해 현재까지 농성하고 있다.

반면 삼성생명은 요양병원 입원이 수술, 항암, 방사선치료 등 ‘암의 치료를 위한 직접 목적으로 하는’ 또는 ‘암의 직접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이 사회적 책임을 소통을 강화하는 데 발맞춰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 스스로 경영세습과 단절할 뜻을 내놓은 것은 물론 삼성이 고수해온 무노조경영도 포기했다. 

이 부회장의 재판을 앞두고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로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사회의 변화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소통하고 발맞추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을 떠받치는 핵심 계열사이자 국내 생명보험업계의 '맏형'이다. 

삼성생명을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7개 계열사는 4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에 따른 후속조치를 설명하기로 했다. 

삼성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생명이 암환우모임과 1년 넘게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만 골몰한 채 대화를 통한 합의를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삼성생명은 암환자들에게 요양병원 입원비 지급을 거부하는 명분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암환우모임의 시위를 놓고도 '법 대로' 할 뿐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요양병원에서 입원한 채로 암 치료를 받은 한 환자는 암 입원비를 지급하라며 삼성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지난달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암환우모임이 유독 삼성생명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2018년 9월 분정조정위원회에서 말기암 환자의 입원, 집중 항암치료 중 입원, 암수술 직후 입원 등과 관련해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할 것을 권고했지만 삼성생명은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암 입원 보험금 분쟁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의 지급권고를 ‘전부 수용’한 비율은 62.8%로 나타났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전부 수용 비율은 각각 90.9%와 95.5%로 집계됐다. 다른 생명보험사들은 모두 암 입원비 지급권고를 100% 수용했다.

삼성생명은 올해 들어 3월말까지도 입원비를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권고를 64.4%만 그대로 따랐다.

생명보험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보험금 지급을 놓고는 가장 까다롭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은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소송을 통해 보험금 분쟁을 마무리 하는 일이 많아지고 보험금 지급에 까다롭다는 인식이 고착화되면 삼성생명의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은 김용희씨에게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은 치유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부족했던 점 때문에 가족분들이 겪었을 아픔에 진심으로 위로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암환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면 140일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암환자들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