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다. 무역규모로 따지면 세계 8위다. 수출은 이미 7위이기 때문에 잘 하면 무역규모 7위에 오를 수도 있다. 정부는 2020년 무역 2조 달러를 달성해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무역 5강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경제와 무역 규모가 커짐에 따라 한국기업의 규모도 커졌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졌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춘이 매출액 기준으로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14개 한국기업이 들어 있다. 미국 경제월간지 포브스가 매출과 순이익, 자산, 시가총액 등을 종합해 선정하는 글로벌 2000대 기업에도 지난해 64개 한국기업이 포함돼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한국기업은 5개 포함됐다.

  기업과 기업인이 분리되는 '한국적 현상'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한국기업은 이렇게 이미 세계적 기업이 돼 있다.


특히 한국기업은 한국의 대표상품이다. 한국이 만든 최고상품은 휴대폰이나 자동차, 조선, 반도체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얘기다.


최근 한국에 거주하는 유럽인과 북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대표이미지는 하이테크와 삼성이었다.


세계시장에서 한국기업의 브랜드는 한국의 국가 브랜드보다 훨씬 강하다. 외국인들은 삼성이나 현대차, LG는 알지만, 이들이 한국기업이라는 것은 잘 모른다. 이 때문에 어떻게 해야 기업의 브랜드를 국가 브랜드로 연결할까 정부당국자들이 고민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 기업인들은 그리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고 한국기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지만 존경은커녕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자리를 만들고 국부를 키우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인들에 대한 평가는 지나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 기업인들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3년 상반기 기업호감지수는 100점 만점에 48.6점이었다. 기업호감지수란 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지수화한 것이다. 그런데 기업호감지수는 2011년 상반기(51.2점)이후 줄곧 낮아지고 있다. 더구나 대기업에 대한 호감지수는 45.3점으로 중소기업(67.8점)보다 훨씬 낮다.

나는 이 조사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호감지수’가 아니라 ‘기업인호감지수’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한국인들이 ‘기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기업인’을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기업을 싫어한다면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회사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기업 호감도가 그렇게 낮다면 대학생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까지 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대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의 오너이거나 경영자들이다.

한국기업은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인은 여전히 비판과 비난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왜 우리사회에서 기업과 기업인이 분리되고 있을까?

기업호감지수 조사결과를 보면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기업호감지수는 국가경제 기여, 윤리경영 실천, 생산성과 기술향상, 국제경쟁력, 사회공헌 등 5대 요소를 평가한 뒤 여기에 전반적 호감도를 더 해 산정한다. 지난 해 상반기 조사결과 국제경쟁력(79.6점), 생산성과 기술향상(61.7점), 국가경제 기여(51.2점)는 호감지수가 50을 넘었다. 그러나 윤리경영 실천(23.7점)과 사회공헌활동(40.9점)은 50점을 밑돌았다. 대기업의 윤리경영 실천과 국가경제 기여 부분은 각각 19점과 48.8점에 그쳤다.


특히 조사 대상자들은 기업에 대해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윤리적 경영자세 부족(50.9%)을 꼽았다.

한국사회에서 기업인을 평가하고 존중받지 못 하는 핵심이유는 투명성 부족이다. 한국인들은 기업인들이 법과 질서를 지켜가며 정상적으로 경영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위해서 비상식적 비윤리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기업과 기업인이 분리되는 '한국적 현상'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특히 대기업들은 일상적으로 불법과 탈법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과 제도를 교묘하게 피해 부를 확장하고 경영권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키고 감독당국자들에게 뇌물을 준다고 생각한다.


최근 연이어 진행되고 있는 재벌 총수들에 대한 검찰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기업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하고 있다.

기업인들이 맡고 있는 역할, 국가사회에 대한 기여 등을 감안하면 기업인에 대한 이미지는 바뀌어야 한다. 기업인들이 더 이상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아니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인들은 물론 국가사회 전체가 불행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성장발전해야 국가가 부강해지고 국민들의 삶이 윤택해진다. 기업이 없다면 국가사회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 만큼 기업인들이 하루 빨리 사회적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업인들 스스로 투명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한국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고, 세계적 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걱정이 많다. 중진국 함정의 핵심원인은 기술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다. 성장동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나는 투명성이라고 생각한다. 투명성이 개선돼야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기업이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이 되려면 최고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글로벌기업이 되려면 투명성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상의와 전경련이 국민의 ‘반기업 정서’ 해소를 위해 만든 ‘기업사랑협의회’는 국민을 대상으로 활동하기에 앞서 기업, 특히 대기업의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을 대상으로 투명성 확보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투명성 확보에 주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신현만은 한국 최대 헤드헌팅회사인 커리어케어의 회장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에서 창간 때부터 기자를 했고 한겨레신문 자회사 사장을 맡아 경제주간지를 발행하고 컨설팅사업을 전개했다. 아시아경제신문사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보스가 된다는 것> <능력보다 호감을 사라>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 <이건희의 인재공장> 등 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