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코로나19로 글로벌 자동차시장이 위축되는 악재까지 겹쳐 실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나면서 삼성SDI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배터리 관련 협력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서 대부분의 전기차배터리를 받아왔다. 2019년 말에는 SK이노베이션을 2021년부터 양산되는 프리미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삼성SDI와는 접점이 크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전기차 등 미래차에 힘을 싣고 있어 전기차배터리 수요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 전략’을 중심으로 전기차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2025 전략은 2019년 기준 9종인 전기차를 2025년 23종으로 확대하고 현대차와 기아차를 포함한 전기차 판매량을 2025년까지 연간 100만 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뼈대로 한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더 많은 배터리 물량을 확보하고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공급사를 찾을 필요가 있는 셈이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도 전기차배터리쪽에서 새 고객사 확보가 절실하다. 삼성SDI는 전기차배터리를 포함한 중대형전지사업에서 아직 적자를 내고 있다. 삼성SDI 중대형전지부문은 2018년 영업손실 2260억 원, 2019년 영업손실 1690억 원을 봤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실적 개선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SDI의 주요 배터리 고객사인 BMW, 폴크스바겐 등이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상당한 기간 공장을 닫은 데 이어 소비자 구매력이 줄면서 전기차 수요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342만 대에서 2021년 418만 대로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2021년 판매량 전망치가 34% 줄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 사장이 삼성SDI 중대형전지사업 실적을 늘리기 위해서는 현대차그룹과 같은 거대 자동차기업과 연계해 사업 다각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삼성SDI가 실제로 현대차그룹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적지 않다.
우선 전기차배터리 사양과 형태 등과 관련해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삼성SDI는 전기차배터리로 각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반면 현대차그룹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채용해 왔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의 이날 만남이 이런 의견 조율의 발판을 놓기 위해 이뤄졌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SDI가 새 배터리를 개발하거나 현대차그룹이 각형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는 전기차를 내놓는 방안을 논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쪽에서는 이번 만남이 업무협약(MOU) 등 구체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재계 총수의 만남이 삼성SDI에서 이뤄진 것을 두고 전 사장에 관한 삼성그룹의 신뢰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6일 대국민 사과한 이후 현장경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자동차 전자장비(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결정하는 등 자동차 관련 산업에 큰 관심을 보여 온 만큼 앞으로도 삼성SDI의 전기차배터리사업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전 사장은 3월부터 삼성SDI 대표이사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삼성그룹에서 흔치 않은 대표이사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헝가리공장을 증설하는 등 전기차배터리를 키운 성과와 2019년 역대 처음으로 매출 10조 원을 넘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