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사업보국 이념을 꺼내들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힘을 쏟아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행보와 무관치 않다.
이 부회장이 13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을 단독으로 만난 것은 향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협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추진을 선언한 뒤 사흘만에 재계 1,2위 기업 총수가 개별적으로 첫 회동을 진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두 기업은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던 두 기업은 창사 이래 3대를 거치면서 큰 사업적 교류가 없었다.
국내 기업 중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대표 기업인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은 국내 경제에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가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회사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최근 강조하고 있는 사업보국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2019년 11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32주기 추도식에서 계열사 사장단에게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자”고 말했다.
코로나19 정국에서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사업보국 뜻에 따라 수백억 원의 성금과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마스크와 진단키트 제조업체를 도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도 했다.
정 부회장과 만남 역시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1, 2위 기업의 총수가 만나 협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사업보국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사업보국 행보가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파기환송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이 부회장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재판으로 이 부회장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많아진 가운데 사업보국 노력이 이미지를 쇄신할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6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라 경영권 승계, 노동 문제, 시민사회 소통 등을 놓고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일주일 만에 첫 공식 행보로 정 부회장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에서 세 차례 고개를 숙이며 경영권 대물림 포기를 밝혔으나 여전히 진정성 등을 놓고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대국민 사과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이 구체적 실행방안을 제시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총수로서 오너경영을 통해 부정적 여론을 극복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는 대국민 사과에서 “제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이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의지를 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부회장은 총수로서 어느 때보다 활발한 대외활동이 절실하지만 세계에 퍼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 동안 일본과 인도, 중동 등 해외에서 경영활동 폭을 넓혀왔으나 현재로서는 글로벌 행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에서 삼성을 제외하고 가장 큰 기업인 현대차 총수와 만남은 글로벌 경영활동의 제약을 고려할 때 이 부회장에게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만남에서 두 사람은 차세대 전기차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언급한 내용과 연관이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오랜 시간 기술력을 쌓아온 배터리사업은 이 부회장이 말한 ‘잘 할 수 있는 분야’임과 동시에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자 전고체 배터리는 ‘신사업’으로도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이 미래성장사업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는 차량용 전자장비(전장) 사업도 향후 현대차와 협력이 구체화된다면 기대를 해 볼 만한 부분이다.
이 부회장은 2016년 오디오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해 전장사업을 본격화했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오토를 출시하고 삼성전기가 차량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 전장분야에 힘을 주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