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를 대신할 PC용 시스템반도체를 선보인다. 

인텔은 ‘반도체 공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PC용, 서버용 CPU 분야에서 압도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고객인 애플이 인텔로부터 이탈하면 인텔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어 반도체업계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애플 '인텔 CPU' 대체작업 속도붙여, 반도체 공룡 인텔 입지 흔들리나

▲ 팀 쿡 애플 CEO(왼쪽)와 로버트 스완 인텔 CEO. 


26일 미국 블룸버그 등 외국언론을 종합하면 애플은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의 CPU 설계자산을 기반으로 자체 반도체 3종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1종이 2021년 출시되는 애플 PC ‘맥’에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PC에 앞서 노트북 ‘맥북’에 새 CPU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애플은 2006년 초부터 맥과 맥북에 인텔 CPU를 사용해 왔다. 무려 15년 동안 인텔과 협력했던 애플이 ‘탈인텔’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인텔이 반도체 미세공정에서 뒤처지는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본다. 

반도체는 얼마나 미세한 회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소비전력과 연산능력 등 성능이 달라지는데 인텔은 최근 반도체 생산공정을 14나노급에서 10나노급 이하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공정에 따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반면 인텔 경쟁사인 AMD는 이미 7나노급 CPU를 출시했고 5나노급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인텔 고객사인 애플도 머지않아 아이폰용 5나노급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AP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를 말한다.

인텔의 CPU 성능 개선이 지연되면서 맥 판매량도 줄어들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미국의 맥 판매량은 134만 대로 최근 5년 이래 가장 적은 분기 판매량을 보였다.

애플로서는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다른 기업의 CPU를 채택하거나 스스로 CPU를 개발하는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셈이다. 실제로 애플의 PC용 자체 반도체는 5나노급 공정에서 만들어질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이 새 CPU를 맥에 적용하는 목적에는 운영체제 iOS를 기반으로 한 자체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모바일기기는 ARM의 CPU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AP ‘A’ 시리즈를 탑재하고 있다. 모바일기기와 PC가 같은 종류의 CPU를 사용하게 되면 애플 애플리케이션의 호환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블룸버그는 "맥, 아이폰, 아이패드가 동일한 기반에서 실행되면 애플은 더 쉽게 앱 생태계를 통합하고 컴퓨터를 더 자주 업데이트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텔 CPU가 비싸 애플이 자체 개발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는 말도 나온다.

IT매체 더버지는 궈밍치 톈펑국제증권 연구원 보고서를 이용해 “애플이 ARM 기반 자체 반도체로 전환하면 인텔의 반도체를 쓰던 때와 비교해 CPU 비용을 40~60%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이 더 이상 인텔 CPU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 인텔의 위신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인텔은 빠르면 2021년부터 7나노급 공정으로 진입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세계 최대 모바일기업이 이런 로드맵에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다만 애플이 인텔을 벗어난다고 해도 당장 인텔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인텔 매출에서 애플의 PC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5%가량에 그친다. 

최근 PC시장이 위축되고 서버 및 데이터센터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애플의 이탈에 따른 손해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작아질 수도 있다. 

또 애플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반도체를 이른 시일 안에 내놓을 수 있을지에 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그동안 개인 소비자나 기업들이 애플 PC 및 노트북에서 인텔 CPU 기반 프로그램을 이용해 왔는데 이를 다시 ARM의 CPU에 적합하게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포브스는 “ARM 기반 맥북이 직면한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다른 기업들의 응용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애플이 한 번에 인텔에서 ARM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ARM의 CPU 성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RM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쪽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외 제품군에서는 인텔 CPU와 비교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와 퀄컴이 협업해 2016년 이후 '스냅드래곤850' 등 ARM 기반 PC 및 노트북용 CPU를 지속해서 내놨지만 아직 시장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IT매체 WCCF테크는 “마이크로소프트도 퀄컴 CPU에서 윈도우가 작동되도록 하는 등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특별한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애플이 인텔에서 ARM으로 전환하는 것은 난제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