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애초 4월 말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 납입을 사실상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인수 연기 이유로 여겨졌던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승인 결과가 모두 나와도 대금 납입 등 다음 절차가 진행될지 미지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며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해외 6개국 공정당국에 기업결합을 신청했는데 최근 미국에서 기업결합을 승인받으면서 러시아 한 곳의 승인만 남겨놓고 있다.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종료가 눈앞에 왔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작업에 필요한 유상증자,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회사채 발행 등을 진행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 때부터 인수의지를 강하게 보이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경영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신규자금을 투입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아시아나항공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그는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을 맺을 때도 2020년 4월 인수 마무리를 목표로 내세우며 “즉시 인수작업에 착수해 아시아나항공을 조속히 안정화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항공업계가 사상 최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해만해도 정 회장은 경쟁자보다 5천억 원이나 많은 2조5천억 원을 인수대금으로 써낼 정도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적극적 태도를 보였지만 지금은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이 정 회장의 인수 철회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시장에서는 항공업의 바닥이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지금이라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발을 빼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말도 꾸준히 나온다.
정 회장이 지금 인수를 철회하면 계약금 2500억 원을 잃는 데서 끝나지만 인수 이후에도 항공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기존 사업 전체가 흔들리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계약금 가운데 일부는 향후 민사소송 등을 통해 일부를 돌려받을 가능성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철회는 HDC그룹의 본업인 건설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으로 쓰기 위해 3월 3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했는데 당시 투자설명서를 보면 만약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취소되면 이 자금을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 등에 쓰기로 했다.
반면 산업은행은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철회하면 만만찮은 후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사실상 정부주도의 작업으로 평가된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금호그룹의 부실경영을 문제 삼아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밀어붙였다.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되면 한동안 매각작업을 다시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이 다시 아시아나항공을 지배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매각이 무산되면 최근 1년 동안 항공업계 안팎에 불필요한 혼란만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셈이다.
항공업계와 금융업계에선 산업은행의 추가 지원 강도에 따라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정 회장과 채권단의 위치가 뒤바뀐 만큼 정 회장이 지연 전술을 통해 산업은행 등 정부 지원을 압박할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HDC그룹 관계자는 “계약 마무리 시기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상황에 맞춰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정 회장은 우선 정부가 발표를 앞둔 항공업 등 기간산업 지원방안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만간 20조 원 규모의 항공업 등 기간산업을 향한 지원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등 대형 항공사를 향한 지원책이 담길 가능성이 나온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 지원책에는 미국 사례에 따라 정부가 항공사의 지분 일부를 취득할 권한을 보유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며 “항공업계는 조만간 발표될 정부의 지원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