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한국 정유4사가 수익성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정유사들은 아람코의 판매정책 덕분에 2분기에는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저유가가 장기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 1분기 재고 평가손실까지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왼쪽),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
17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아시아에서 공격적 판매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아람코는 두바이유와 오만산 원유의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공시 판매가격(OSP)을 결정하는데 아시아에 판매하는 아랍 경질유(아랍라이트)의 5월 공시 판매가격을 배럴당 -7.3달러로 책정했다.
두바이유와 오만산 원유의 평균가격에서 7.3달러를 뺀 것이 아랍 경질유의 판매가격이라는 뜻이다.
업계에서 ‘파격적 가격 인하’라는 평가가 나왔던 4월 공시가격보다도 4.2달러를 더 낮췄다.
현지시각으로 16일 선물 두바이유와 오만산 원유,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장 마감가격은 배럴당 각각 21.71달러, 23.42달러, 19.87달러였다.
일반적으로 두바이유 가격은 서부텍사스산 원유보다 4~5달러가량 비싸고 오만산 원유보다 1~2달러 저렴하다. 이 때문에 아람코의 아랍 경질유는 서부텍사스산 원유보다 가격 경쟁력이 약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시아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의 저가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상황이 됐다.
글로벌 에너지시황 분석기관 오일프라이스(OilPrice)는 “러시아와 이란 및 기타 산유국들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임이 명백하다”며 “아람코가 원유시장에서 파격적 할인으로 새로운 점유율 전쟁을 시작했다”고 논평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한국 정유4사에는 아람코가 아시아에서 펼치는 공격적 판매정책이 가뭄에 단비와 같다.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달러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정제마진은 배럴당 4달러를 넘어선 주가 없다. 3월 셋째 주(3월16일~3월20일)부터는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국내 정유사들의 원유 도입시차를 고려한 1달 후행 정제마진은 4월 둘째 주(6일~10일) -19.1달러까지 떨어졌다.
원유를 정제하면서 손해를 보는 상태가 계속되자 SK이노베이션은 정제설비 가동률을 85%로 낮췄고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하반기 예정됐던 정기보수를 앞당겨 진행하고 있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아람코의 공시 판매가격 할인으로 국내 정유사들에 저렴한 원유의 도입을 늘릴 수 있다는 선택지가 생겼다”며 “정유사들의 원가 부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정제마진 개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긍정적”이라고 봤다.
그러나 아람코의 공격적 원유 판매정책에 따른 수익성 개선효과는 정유4사의 2분기 실적 개선으로 그칠 뿐 1년 농사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정유4사는 이미 1분기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원유 재고의 평가손실을 대규모로 떠안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7255억 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한다. 에쓰오일 1분기 영업이익의 시장 기대치(컨센서스)는 영업손실 4774억 원이다.
DB금융투자는 GS칼텍스의 1분기 적자규모를 5841억 원으로 추산했으며 대신증권은 현대오일뱅크가 1분기 적자 4782억 원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
정유4사의 1분기 예상 적자 합산치는 2조2652억 원에 이른다. 2019년 1분기 영업이익 합산치인 1조318억 원과 비교하면 이익이 3조2970억 원 줄어든 것이다.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원유 기준으로 2019년 12월 평균 배럴당 59.8달러에서 2020년 3월 30.8달러까지 떨어졌다. 4월 들어서는 배럴당 20달러선을 위협받고 있다.
▲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왼쪽),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
이에 앞서 1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기타 산유국들의 모임(OPEC+)이 긴급회의를 열고 하루 원유 생산량을 970만 배럴 줄이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석유수출국기구는 16일 보고서를 내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루 원유 수요가 4월 2천만 배럴, 2020년 상반기 120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라이스태드에너지(Rystaad Energy)나 오일프라이스 등 민간 분석기관에서는 하루 원유 수요가 3천만 배럴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량이 예상 수요 감소분에 못 미치는 만큼 감산 합의가 저유가의 장기화 추세를 뒤집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예상된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에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밑돈다면 정유사들 실적에 재고 평가손실이 추가로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