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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KDB산업은행의 대수술을 예고했다.
산업은행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사태가 터진 뒤 총체적 위기에 휩싸였다. 국책은행으로서 자회사 관리와 기업 구조조정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다고 뭇매를 맞고 있다.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도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었다. 홍 회장은 오는 21일 열리는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해 집중추궁당할 것으로 보인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의 정책금융기관 역할을 다시 정립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은행의 자회사를 대거 매각하고 산업은행이 추진해온 기업구조조정도 전문성있는 기관으로 넘긴다.
금융위는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역할강화 방안’을 10월경 내놓기로 했다.
◆ 자회사 관리에 실패한 산업은행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을 계기로 자회사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31.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2분기에만 3조 원 이상의 적자를 봤다.
산업은행은 부행장급 임원을 최근 5년 동안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임명했다. 기업금융4실장을 대우조선해양 비상무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인사는 최근 3년 동안 열린 대우조선해양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약 60%만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관리를 소홀히 해 대규모 부실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이 다른 자회사들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은행은 지난 6월 기준으로 지분 15%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 288곳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기관을 제외한 비금융 자회사가 116곳에 이른다.
산업은행은 경영이 악화한 기업을 출자전환 형태로 지원하면서 자회사로 편입해 왔다. 경영이 정상화하면 시장에 지분을 매각해 공적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자회사 매각에 소극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은 '재벌’이 되고 말았다.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된 뒤 기업가치가 하락하면서 매각이 더 힘들어진 기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업은행이 2008년 매각을 추진할 때 몸값이 6조4천억 원 규모였으나 현재의 대우조선해양 시가총액은 1조 원이 약간 넘는 수준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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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8월26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해양보증보험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
◆ 대기업 구조조정도 매끄럽지 못해
산업은행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허점을 보였다. 투입한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고 구조조정과정도 매끄럽지 진행하지 못했다.
산업은행은 금호산업의 경영권 매각을 5개월째 미루다가 최근 매각가격으로 7228억 원을 결정했다. 이는 금호산업 경영정상화에 1조 원 이상을 투입한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을 비롯해 채권단이 큰 손실을 보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이 과정에서 ‘헐값매각 논란’과 ‘조기매각’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금호산업 경영정상화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자했는데도 금호산업 경영에 실패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기업을 다시 넘겨줘 ‘특혜성 구조조정’이라는 사례를 남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물론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이나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그동안 축적해 온 기업 구조조정 경험에 비춰 보면 전문성이 기대이하라는 지적이 많다.
◆ 홍기택, 리더십 최대 위기
홍기택 회장은 2016년 3월 임기종료를 앞두고 최대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홍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됐던 산업은행의 민영화에서 정책금융기관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지금도 투자수익을 내야 하는 일반은행과 기간산업 정상화를 지원해야 하는 국책은행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원금을 회수하려 하는 채권단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정치권 등의 부실기업 지원 압박에도 버텨야 한다.
홍 회장이 이런 샌드위치 신세인 산업은행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호산업의 경우 매각과정에서 최대주주인 미래에셋금융 사모펀드 등과 의견을 조정해 빠른 매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애매한 입장을 지키다가 주채권은행의 주도권이나 국책은행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셈”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도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10년 이상 자회사로 두면서도 경영진에게 주요한 책임을 떠넘겼다”며 “대우조선해양 경영진도 산업은행에 책임을 넘기려 들면서 누구도 문제를 떠안지 않으려던 상황이 지금의 부실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실패하면 곧바로 국민의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현행법에 따라 이익적립금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 없을 경우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때문에 올해 상반기 25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1조 원의 유상증자를 할 경우 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 때문에 산업은행에 추가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홍 회장에 대한 책임론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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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왼쪽)과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뉴시스> |
◆ 기간산업 짊어진 산업은행의 부담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 조선과 건설업 등 불황에 허덕이는 기간산업의 기업을 지원하는 이상 부실기업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임종룡 위원장도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대형 수출산업 지원을 주로 하다가 재무건전성 악화와 부실기업 인수 등을 겪게 됐다”며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잠재위험성을 관리하기 위해 불황에 빠진 업종의 기업들에 내줬던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가 터지자 일제히 여신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면서 산업은행의 부담도 더욱 커지고 있다.
홍 회장은 지난 7월 말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에 대해 산업은행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고 털어놓았다.
산업은행이 제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데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는 산업은행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가계대출 등 안정적 수익구조를 늘리도록 주문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 회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자회사의 매각과 사장 인사 등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산업은행은 정치권의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 임종룡, 산업은행 구조개편 추진
임종룡 위원장은 산업은행의 구조를 최대한 간단하게 개편해 산업은행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토대를 놓으려고 한다. 비금융자회사를 대부분 정리하고 구조조정 업무도 다른 곳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이 대기업, 기간산업, 수출기업 등을 지원했던 행태를 바꿔 민간시장에서 못하는 중견기업 지원 등을 메우는 본래 역할을 맡도록 하겠다”며 “정보통신기술(ICT)이나 바이오 등 미래산업과 기술금융을 주로 챙기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의 비금융자회사 가운데 20여 곳을 먼저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 매각 목록에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 등 굵직한 자회사도 포함됐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의 비금융자회사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라며 “구조조정과 창업지원 등 투자목적을 달성한 기업은 당연히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업무도 오는 10월 출범하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에 넘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KDB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 등 금융자회사 3곳에 대한 매각공고를 10월 초 낼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대우증권 지분 43%, 산은자산운용 지분 100%, 산은캐피탈 지분 99.92%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증권의 경우 매각가격이 2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