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들이 정부의 ‘부실벌점제’ 개편 예고에 선분양 제한 등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가 코로나19와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경영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서울 일대의 아파트 모습.
10일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7월 시행되는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은 운영하는 현장이 많은 대형건설사에 좀 더 불리한 방향으로 부실벌점제를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실벌점제는 공사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 건설사에 벌점을 물려 이를 근거로 각종 사업에서 불이익을 주는 제도다.
현재는 개별 건설회사가 전체 현장에서 받은 벌점 누적액을 현장개수로 나눠 최종 벌점으로 부과하는 ‘점검현장 평균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벌점 누적액을 나누지 않고 그대로 부과하는 ‘합산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예컨대 10개 현장에서 점검을 받은 건설사가 벌점 누적액을 1점 쌓았다면 기존에는 1점을 10으로 나눠 0.1점만 최종적으로 부과했지만 앞으로는 1점을 모두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장이 많은 대형건설사의 벌점이 지금보다 대폭 증가하면서 주택 분양시기, 공공공사 입찰, 시공능력평가액 산정 등에서 불이익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국내 시공능력평가 100위 안에 드는 건설사는 벌점제도 개정으로 벌점이 평균 7.2배, 최대 30배까지 많아질 것”이라며 “1개 현장을 운영하는 업체에서 발생한 1건의 부실과 100개 현장 운영업체에서 발생한 1건의 부실에 동일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바라봤다.
특히 벌점을 1점 이상 쌓으면 적용되는 주택 선분양 제한이 이전보다 늘어날 가능성에 관해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국토교통부 벌점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8~2019년 국내 시공능력평가 순위 5위 안에 드는 대형건설사들의 벌점은 삼성물산이 0.32점, 현대건설이 0.11점, 대림산업이 0.1점, GS건설이 0.14점, 대우건설이 0.03점 등이다.
이 정도 규모의 대형건설사들은 현장 수가 100곳이 넘어가는 때가 많아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부분 선분양 제한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정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벌점이 1점 이상인 건설사는 골조공사를 3분의 1이상 마쳤을 때만 주택 분양을 할 수 있다. 3점 이상은 골조공사 3분의 2이상, 5점 이상은 골조공사를 다 끝낸 뒤 분양이 가능하고 10점 이상이면 사용검사까지 마쳐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 분양계획이나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금융비용 부담도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벌점제도 개정에 따라 사실상 후분양이 강제되면 안 그래도 각종 규제로 속도가 나지 않는 도시정비사업 추진속도가 더욱 느려질 수 있다”며 “조합원들의 금융조달 부담이 늘어나며 1군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는 선택권이 제한되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부실벌점이 대량 부과되면 해외사업에서 외국경쟁사의 선전에 악용되는 등 해외수주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2일 간담회를 열고 부실벌점제와 관련한 문제를 토의하기로 했다. 해당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2일 끝났지만 건설업계 반발이 거센 만큼 의견수렴 절차를 다시 한번 거치기로 했다.
대한건설협회 소속 회원사 일동은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낸 탄원서에서 “건설현장의 현실과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번 개정안을 철회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며 “건설업계도 성실시공 및 사업관리, 안전확보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홍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