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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영화 ‘연평해전’이 스크린 바깥에서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이 영화는 2002년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벌어진 실화를 다루고 있다. 개봉과 동시에 애국관람 열풍이 불면서 ‘아전인수’격 해석도 난무하고 있다.
연평해전은 제작 당시부터 제작자가 바뀌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다. 개봉일마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미뤄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평해전은 24일 개봉되자마자 ‘쥬라기월드’의 흥행기세를 단번에 꺾고 1위에 올라섰다. 연평해전은 개봉 이틀 만에 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세에 눌려 극심한 흥행가뭄에 빠진 한국영화계에 단비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해상에서 벌어진 제2연평해전을 다룬다. 연평해전은 월드컵 3·4위전을 앞둔 6월29일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한 사건이다. 당시 젊은이 6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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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순 감독. |
김학순 감독은 시사회에서 “홍보영화가 아니고 정치 얘기가 아닌 사람 얘기를 만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달라는 뜻이다.
김 감독의 이런 바람은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개봉과 동시에 정치인들의 관람이 줄을 이으면서 정치적 이슈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25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영화 상영회를 열고 연평해전을 단체관람 했다. 관람에 앞서 국민의례와 묵념행사를 갖기도 했다.
상영회는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이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의원은 연평해전이 영화제작 당시 제작비 모금에 어려움을 겪자 크라우드 펀딩에도 참여하는 등 지원한 인연이 있다.
영화 관람 뒤 이병석 의원은 “결코 잊어선 안 될 일을 잊고 살았던 우리가 기억을 스스로 일깨우는 순간”이라고, 신기남 의원은 “영화가 국민 마음속에 파고들어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새록새록 솟아나길 바란다”고 각각 소감을 밝혔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지 않았으나 애국심을 환기하는 정도라면 문제될 만한 오독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일찌감치 영화관을 찾았다. 이 대통령은 “재임 당시 연평해전이 발발하지 않았지만 취임 뒤 이 사건을 새롭게 평가했다”며 “변함없이 이 나라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소감에서 방점은 재임 당시가 아니었다는 데 찍힌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한술 더 떴다. 김 의원은 관람 뒤 트위터에 “대통령 한 번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된다”, “그 다음 대통령은 아예 NLL을 적에게 헌납하려 했다”는 글을 남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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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CGV청담씨네시티에서 영화 연평해전 관람을 마치고 상영관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페이스북에 “정치적 이유와 잘못된 교전규칙으로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 산화한 장병들을 보며 국가안보에도 보수, 진보로 갈리는 한국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홍 지사는 “영결식보다 일본에서 거행된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한 대통령을 보고 얼마나 국가를 원망했을까”라고 덧붙였다.
정치인들이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으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전현직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보수 진보로 갈리는 한국이 안타깝다던 홍 지사야말로 이념논쟁의 불을 당긴 셈이다.
이념논쟁에 북한도 빠질 수 없다. 북한은 24일 대남선전용 사이트 ‘우리끼리’를 통해 “괴뢰극우보수분자들이 저들의 군사도발로 초래된 서해 무장충돌사건을 심히 왜곡날조한 불순반동영화, 반공화국 모략영화”라고 비난했다.
연평해전을 관람한 관객들의 평가는 대체로 휴머니즘과 가족주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전상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인간애와 동료, 전우애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감동과 공감지수도 높다.
연평해전은 스토리텔링이 강하고 실감나는 해상전투신 등으로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치인들 덕분에 화제몰이에도 성공하고 있다.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난 관람객의 평가는 몇 점일지 주목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