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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CEO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벌어지는 분쟁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물산이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세에 맞서 KCC에 자사주를 매각한 데 대해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법적 소송을 통해 삼성물산의 경영권 분쟁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시민단체를 비롯해 정치권까지 삼성그룹의 합병 추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 오너 일가의 이익만을 위한 합병이라는 것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경영참여를 밝히며 의도했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을 비롯한 투자자들도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이 깊다.
◆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놓고도 법정공방 예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물산이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법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제휴사에 매각한 것은 합병과 관련해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삼성물산과 이사진 및 관계자들의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불법적 시도”라고 규정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과 이사진, KCC를 상대로 긴급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자사주가 합병결의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식이 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도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이사회의 자사주 매각결의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적법하고 정당한 결정”이라고 공박했다.
삼성물산은 11일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5.76% 전량을 11일 KCC에 매각했다. 보통주 899만주 대상이며 매각가는 6743억 원이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합병안 통과에 필요한 우호지분을 13.99%에서 19.75%로 끌어올려 합병 성사 가능성을 높였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으나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 의결권이 발생한다.
◆ 지배주주 이익 위한 합병에 대한 반대여론 확산
삼성물산은 자사주 매각을 통해 합병을 위한 초강수를 뒀지만 역풍도 만만치 않다.
경제개혁연대는 11일 삼성물산 자사주가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잘못 쓰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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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 결정은 오로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 주주 전체의 재산인 자사주를 오용한 것”이라며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은 회사와 주주 전체의 재산이기 때문에 특정주주, 특히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오직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와 승계만을 우선하는 삼성그룹의 후진적 지배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일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1일 삼성물산 이사진에 대한 배임의혹을 제기하며 금융당국의 조사를 요구했다.
김 의원은 “합병시점이나 비율과 관련해 삼성물산 이사진에 배임의혹이 없는지, 합병비율 문제로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았는지 면밀히 따지고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번 사건은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우선이냐,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 방지가 우선이냐는 해묵은 논쟁의 연장선에 있는데 재벌과 투기자본의 비합리적 행태 모두가 우려된다”며 “합병논란과 관련 금융당국의 조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합병의 목적은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라며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합병 상대방인 제일모직 2대주주에게 자사주를 매각하는 행위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 국민연금 등 투자자들의 선택 고심
삼성물산 합병이 삼성그룹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방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이슈로 확대되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주주총회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9.92%를 보유해 단일주주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밖에 일성신약은 2.11%, 국내 기관은 2.45%를 보유하고 있다. 소액주주 지분은 31%가 넘는다.
삼성물산 합병이 삼성그룹-KCC 동맹군 대 엘리엇매니지먼트-소액주주의 2파전 양상을 보이면서 국민연금 등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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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증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연금이 헤지펀드의 편을 들었다가 수익을 챙겨서 달아나는 이른바 ‘먹튀’를 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익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인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편을 들기도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단순히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증시에 상당히 의미있는 사안”이라며 “오너가 지배하는 재벌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으로서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아직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찬성 또는 반대를 모두 열어놓고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합병비율이 적합하게 산정됐는지 등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11일 합병안에 대해 의결권 위원회를 열어 결정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삼성그룹주펀드를 운영하며 삼성물산 지분 2.9%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삼성물산 주식의 불공정거래를 확인하기 위한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이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등 규정에 어긋난 매매가 있는지, 이 틈을 타서 부당이득을 취하려 한 세력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