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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진 KCC 회장. |
정몽진 KCC 회장이 삼성물산 백기사로 나서면서 삼성물산 투자에서도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정 회장은 KCC를 통해 제일모직에 투자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KCC가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하면서 동원한 자금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향후 KCC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 정몽진, 명분과 실리 모두 얻나
정 회장은 11일 KCC를 통해 삼성물산의 자사주 전량(5.76%)를 사들였다. 취득가액은 주당 7만5천 원으로 모두 6743억 원 규모다. KCC 자기 자본 대비 10.82%다.
KCC는 전일 장내에서 매수한 주식 32만 주를 더해 삼성물산 지분 총 5.79%를 보유하게 됐다.
이로써 삼성물산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면서 삼성물산은 KCC 지분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하게 됐다.
KCC는 지분 취득목적을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통한 시너지 제고와 전략적 제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주총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표대결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물산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미다.
정 회장은 경영권이 흔들릴 위기에 처한 삼성물산의 손을 잡아주면서 백기사로서 명분을 확보했다. 국내 최고기업의 경영권을 해외 헤지펀드로부터 지켜내는데 도우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적지 않은 실리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KCC의 도움을 받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에 성공할 경우 ‘전략적 제휴’ 조건에 따라 사업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백기사로서 명분이 있는 만큼 정 회장이 합병 삼성물산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KCC는 국내 건축자재 1위 기업으로 국내 1위 건설사인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해 사업적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협력관계가 공고해지면 KCC의 사업실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KCC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합병법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은 2대 주주에 오르게 된다. 삼성물산은 합병 이후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배당확대 등 유화정책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KCC도 상당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합병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합병이 불발될 경우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기획대로 삼성물산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합병이 무산되더라도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지분매입에 따른 경영권 확보와 합병비율 재산정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물산 주가가 오르면 KCC는 그만큼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손해볼 것 없는 장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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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진 KCC 회장 |
◆ 정몽진, KCC 주주가치 훼손했나
하지만 정 회장이 KCC를 통해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데 대해 뒷말도 무성하다.
KCC 자기 자본의 10%가 넘는 적지 않은 금액을 삼성그룹 오너 일가를 위해 사용해 정작 KCC의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KCC가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주당 7만5천 원의 금액은 합병하면서 산정한 주식가치 5만5767원을 크게 웃돈다. KCC로서 삼성그룹이 산정한 삼성물산의 주식가치에 웃돈을 주고 주식을 사들인 셈이다.
대개 백기사를 자처하며 지분을 취득할 때 추후 손실을 막기 위해 지분을 다시 팔 수 있는 권리인 풋백옵션을 도입한다.
하지만 KCC는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하며 풋백옵션을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역시 “손실을 막기 위한 풋백옵션 등의 이면계약은 없다”고 말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물산 주가가 앞으로 하락할 경우 KCC는 손실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 경우 지분 취득을 결정한 정 회장과 경영진에게 배임책임이 돌아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제개혁연대는 11일 “KCC가 비싼 값을 주고 삼성물산 백기사를 자처했다”며 “여기서 발생하는 손해는 고스란히 KCC 주주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사업적 시너지 역시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KCC가 제일모직 지분을 취득했을 때도 사업 시너지를 낼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KCC가 지금까지 삼성그룹 계열사와 맺은 계약은 삼성물산으로부터 수주한 6건에 지나지 않는다. 금액으로 치면 300억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삼성물산 주가는 이날 전일 대비해 7.07% 하락한 6만9700원을 기록했다. KCC가 보유한 지분가치로 따지면 하루만에 500억 원 가까이 증발한 셈이다.
KCC 주가 역시 2.58% 내려 49만 원이 됐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2월7일 이후 1년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KCC가 삼성물산 자사주를 취득한 데 대해 시장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기 때문에 KCC의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CC의 현금과 현금성자산은 3월 말 기준으로 7400억 원이다. KCC의 유동비율은 260% 정도로 양호하지만 삼성물산 주식 취득금액이 워낙 대규모이기 때문에 재무구조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의 주요주주인 KCC는 제일모직 상장으로 약 2조 원의 투자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유지분 가치가 올랐을 뿐 실제로 KCC가 손에 쥔 돈은 지난해 상장 때 구주매출로 벌어들인 3975억 원뿐이다. 시세차익만 따지면 1240억 원이 전부다.
KCC는 지난해 11월 3천억 원 규모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취득하기 위해서 보유한 부동산을 3천억 원에 처분했다. 자기자본 대비 5.89% 규모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KCC가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하려면 자산 유동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