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암초를 만났다. 글로벌 헤지펀드가 삼성물산 지분을 대거 확보하고 합병안이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삼성물산의 합병작업을 해온 최치훈 사장도 난처해졌다. 최 사장은 삼성물산 저평가 논란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
|
|
▲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
엘리엇매니지먼트는 4일 “삼성의 합병계획은 삼성물산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합병조건도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이날 경영참여 목적으로 지분 7.12%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저평가논란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제일모직은 과대평가됐고 삼성물산은 과소평가됐다”며 합병비율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물산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이상으로 높게 형성되며 합병은 순조롭게 진행될 듯 보였다.
그런데 헤지펀드가 직접 지분을 확보해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최 사장 등 삼성물산 경영진도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최 사장은 삼성물산 저평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최 사장이 2013년 12월 부임한 이후 삼성물산은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순위 1위에 복귀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지난해 주택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주택사업에 나서지 않았다. 최 사장 부임 뒤 삼성물산은 국내에서 주택사업을 한 건도 수주하지 않았다. 래미안으로 아파트 브랜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삼성물산이 주택시장에서 손을 떼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주택시장 활황과 해외 수익성 개선에 힙입어 건설사들 주가가 모두 뛰어올랐지만 삼성물산은 합병 발표 전까지 오히려 지난해보다 낮은 주가를 이어왔다. 삼성물산의 저평가가 최 사장의 '기획작품'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최 사장은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과 함께 합병 대응 IR팀을 꾸려 기관투자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합병 이후 사업과 주가관리 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일단 엘리엇매니지먼트와도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합병은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며 “합병비율은 현재 시장의 평가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물산은 “주주들과 소통해 오해를 풀고 기업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들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거나 실제로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주가를 부양해 투자차익을 거두고 지분을 정리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보유한 지분을 적당한 금액에 사들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제는 자금이다. 3월 말 기준으로 삼성물산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1785억 원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의 가치는 7065억 원 규모다. 과거 헤지펀드들이 경영권을 공격했을 때 높은 수익을 올리고 발을 빼는 점을 감안할 때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기대하는 수익률도 매우 높을 게 뻔하다.
|
|
|
▲ 이영호 삼성물산 부사장 |
삼성물산이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협상에 나설 경우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는 이영호 부사장의 역할도 주목된다.
이 부사장은 삼성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출신으로 삼성물산 건설부문 재무책임자를 맡다가 올해 초 전사 최고재무책임자를 맡게 됐다.
이 부사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작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 사장은 재무보다 영업과 관리에 강점이 있어 재무통인 이 부사장이 이를 뒷받침해 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