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남부내륙고속철도(서부경남KTX) 노선을 놓고 지역마다 역사를 설치해달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워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지자체들의 요청대로 역사를 설치하면 고속철도가 제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경수, 서부경남KTX 역사 설치 요구하는 지자체들 많아 난감

김경수 경남도지사.


13일 경남도청에 따르면 서부경남KTX 노선 인근의 의령군, 합천군, 거창군 등이 지속해서 김경수 지사에게 KTX역사 유치를 건의하고 있다.

서부경남KTX는 경남 거제시와 경북 김천시 사이 181km에 이르는 거리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 노선은 경북 김천·성주·고령, 경남 합천·의령·진주·고성·통영·거제 등 경북과 경남 서부지역의 9개 시·군을 통과한다.

서부경남KTX는 2013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김 지사가 당선돼 공약으로 추진하면서 1월 말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사업에 선정돼 추진되고 있다.

국비 4조8천억 원이 투입돼 2022년 착공, 2028년 개통될 것으로 예정됐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하는 사업적정성 검토 용역이 끝나면 하반기부터 노선과 역사 위치 등을 결정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국토부의 서부경남KTX 기본계획 수립이 가까워지면서 지자체들의 역사 유치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의령군은 '남부내륙철도 의령역사 유치 추진협의회'를 구성했고 합천군도 '합천역사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각 지역에 역사를 설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직접 노선이 통과하지 않은 거창군도 인근 합천군 가야면에 위치한 해인사와 손잡고 '해인사역 유치를 위한 공동추진위원회'를 출범했다.

지자체들은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고속철도와 같은 광역교통망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김 지사는 이런 지자체들의 요구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 지사는 12일 경남도청 도정질문에서 의령, 거창 등 지역구 도의원들이 역사 설치를 건의하자 “역사 위치와 관련해 구체적 말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지자체와 전문가 의견을 듣고 국토부와 잘 협의해 합리적 방안을 찾아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김 지사가 국토부의 역 위치 결정에 적극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는 철도 역사가 난립함으로써 서부경남KTX의 경제성이 위축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발간한 ‘2017년 남부내륙선 철도건설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초 서부경남KTX는 기존 KTX 역이 있는 김천역과 진주역을 제외하고 합천군, 고성군, 통영시, 거제시 지역에 새로운 역이 들어서는 것으로 계획됐다.

일반적으로 고속철도 역 사이 거리는 50km 안팎으로 정해진다.

고속철도 관계자들은 고성-통영 사이 거리는 14.8km, 통영-거제 사이 거리는 12.8km로 노선이 짧아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의령군, 합천군, 거창군이 역사 설치를 요구하는 위치 사이의 거리는 각각 20km 안팎인 것으로 파악된다.

처음 계획된 역들도 역 사이 거리가 짧아 경제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지적받는데 지자체들의 요구대로 추가 역사를 지으면 서부경남KTX가 ‘저속철’이 돼 고속철도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성주군과 고령군 등 서부경남KTX 노선이 지나는 경북지역 지자체들이 추가 역사 설치를 요구하는 상황도 김 지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자체들이 지역 균형발전을 강조하며 역사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만큼 김 지사가 경남 지자체들의 일부 요구를 받아들여 역사 설치를 국토부에 요청하면 경북 지자체들이 형평성을 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당분간 역사 위치 결정에 의견을 내기보다는 서부경남KTX의 규모 자체를 확대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12일 “서부경남KTX를 가능한 한 복선철도로 추진해야 한다”며 “철도 주변지역 역세권을 발전시켜 침체한 지역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