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회장은 조양호 전 회장의 아들로서 치른 이번 총회에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 회장이 이번 총회에서 IATA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된 것은 조 회장에게 큰 의미가 있다.
조 회장은 행사 초반만 해도 회의에서 계속 긴장한 듯 보였다. 총회 의장을 맡은 직후 의사봉을 내려치다 잠깐 실수하면서 짧은 순간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조양호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집행위원 선임이 확정된 뒤에는 한고비를 넘겨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 눈에 띄게 느껴질 정도로 안정감을 보였다.
집행위원회는 IATA의 최고 정책 심의·의결기구다. 290여 개 항공사가 가입돼있는 IATA지만 집행위원회 위원은 31명에 불과하다.
조 회장이 IATA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것은 세계 항공업계에서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 오너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이 IATA에서 거둔 성공은 아직까지는 ‘조원태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조양호 아들로서의 성공’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번 IATA 연차총회에서 조양호 전 회장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컸다. 조 회장으로서는 선친인 조 전 회장이 자랑하던 ‘세계 항공업계 인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개막식 직전 상영된 영상에는 조양호 전 회장의 생전의 열정적 모습이 항공업계를 이끌어 간 다른 세계적 인물들과 함께 등장했다.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IATA 사무총장은 개회사에서 조양호 전 회장을 한 번 더 언급했을 뿐 아니라 개막식을 조양호 전 회장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조 회장은 분명 첫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하지만 IATA 총회를 마무리한 조 회장 앞에는 한진칼 지분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KCGI, 조양호 전 회장의 한진칼 지분 승계문제, 한진그룹 일가를 향한 여론의 싸늘한 시선 등 여러 가지 풀어야랄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한진그룹이 마주하고 있는 국내 문제들은 결국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갑횡포(갑질)’에서 비롯된 여론 악화에서 출발한 것이다.
조양호 전 회장은 특유의 리더십을 통해 대한항공을 세계 수위권의 항공사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지만 ‘소통’의 부족이 결국 그의 말년에 여러가지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조 회장이 그런 점에서 조양호 전 회장과 차별화 할 수 있는 부분은 소통이다. 조 회장은 이미 그가 소통에 능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조 회장은 IATA 서울 총회가 종료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최근 IATA 준비문제도 있고 해서 직원들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저에겐 대한항공을 이용해주시는 고객도 고객이지만 직원들이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에 앞으로 회사문제에 집중해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창립 50주년 신년사에서 “앞으로의 50년은 직원들에게 보답하는 50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조 회장을 한진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기 위해 4월24일 열린 이사회에서도 “소통경영에 중심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이 허언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저는 아라곤, 아라손의 아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소설 ‘반지의 제왕’과 동명의 영화에서 주인공 아라곤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반드시 ‘아라손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아라곤은 아라손의 아들이기 때문에 곤도르의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온전히 그의 능력으로 ‘가장 위대한 인간의 왕’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조원태 회장은 조양호 전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에 한진그룹 회장과 IATA의 집행위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한진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조양호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조원태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소통의 능력’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번 IATA 연차총회에서도 조 회장은 얼굴에 계속해서 미소를 띄운 채 총회를 진행했다. IATA의 다른 간부들이 발언을 하거나 기자들이 질문할 때는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버지의 '보스 리더십'과 달리 '부드러운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조원태 회장이 IATA행사장에서 보여준 그 '부드러운 리더십'이 이제는 한진그룹 임직원들을 향해 발휘될 때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