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133조 원에 이르는 중장기 시스템반도체 투자계획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중책을 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부분의 실적을 책임지는 메모리반도체에도 꾸준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반도체사업 투자를 조율하는 김 부회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
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 대규모 투자의 세부적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시스템반도체를 향한 133조 원의 투자가 2030년까지 중장기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세부 투자계획은 시장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마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에 유례 없는 규모의 투자로 사실상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운 만큼 확실한 방향성을 두고 나아가야만 한다.
시스템반도체가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 분야로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김기남 부회장이 이제는 대규모 투자의 규모와 시기를 큰 틀에서 조율해야 한다.
김 부회장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을 맡으며 스마트폰 프로세서와 이미지센서 등 삼성전자의 자체 기술로 설계한 시스템반도체가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힘썼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시장에서 단기간에 세계 2위로 도약한 점도 김 부회장이 기술력 확보를 중심 목표로 두고 적극적으로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향상에 주력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당장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사업에도 효과적 대응전략을 마련해야만 하는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간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의 업황이 급격하게 나빠지며 실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업황 악화가 최소한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도 높다고 업계는 대체적으로 바라본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위기를 극복하고 실적을 방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전략은 반도체 공정기술 발전과 미세공정 비중 확대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가 꼽힌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모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에만 연간 11조 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메모리반도체에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시스템반도체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모리반도체에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실적에 훨씬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김 부회장이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양쪽을 놓고 시장상황과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투자 비중을 효율적으로 조율하고 결정하는 일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당장 내년 완공되는 삼성전자의 화성과 평택 반도체공장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해야 할 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삼성전자가 EUV(극자외선)공정 전용으로 건설중인 화성 공장은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을 주로 담당하지만 일부 공간에서 EUV기술을 활용한 메모리 생산라인이 구축될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생산 증설을 위해 건설된 평택 새 반도체공장도 계속되는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과 시스템반도체 생산 확대의 필요성을 고려해 시스템반도체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완공되기 전 단계의 반도체공장에서 생산할 제품을 논의하기는 이르다"며 "때가 되면 시장상황에 맞춰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승진하며
이재용 부회장 시대 삼성전자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지위의 전문경영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성장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만큼 김 부회장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동시에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위기 극복까지 이뤄내려면 향후 반도체사업 투자전략에서 김 부회장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회장은 3월 말 주주총회에서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