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업계는 왜 유독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민감하게 반응할까?

28일 세계보건기구가 11차 국제질병 표준분류기준(ICD-11)을 최종 발표하면 2022년 1월부터 게임중독은 공식 질병으로 등재된다. 각 나라 보건당국은 게임중독 관련 통계를 작성하고 예방과 진료를 위해 예산을 배정하도록 권고받게 된다.
 
게임회사들, 게임중독 질병분류 반발에 결정적 2%가 부족하다

▲ 테드로스 아드하농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게임업계는 당장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각자대표이사는 페이스북에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를 많이 만들어야 이익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네오위즈 등은 각각 페이스북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넥슨 노동조합과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게임업계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게임을 마약 등 중독물질과 같은 취급을 한 만큼 게임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나빠지고 매출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은 2023년부터 3년 동안 한국 게임산업 매출이 최대 11조 원 손실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임중독 질병 등재는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사항으로 각국 보건당국은 적용하는데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세계보건기구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4월 질병 분류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도 보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후속조치를 준비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게임회사들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영향력 행사를 시도할 수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와 스마트폰, 유튜브 등 현대사회에 소비자들이 ‘중독’되는 대상은 다양한데 게임중독만 질병 목록에 추가한 것은 학계 주장대로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게임회사들이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데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최고경영자는 14일 한국에서 열린 ‘언리얼서밋’에 참가해 세계보건기구의 결정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사업모델과 수익 창출을 놓고 게임업계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결제를 많이 하면 이기기 쉬워지는 방식이나 확률형 물품상자를 판매해 이용자들이 기대하지 않는 게임물품이 나오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바라봤다.
 
게임회사들, 게임중독 질병분류 반발에 결정적 2%가 부족하다

▲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최고경영자(왼쪽)와 박성철 에픽게임즈코리아 대표가 14일 에픽게임즈가 개최한 개발자 콘퍼런스 '언리얼서밋'에 참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픽게임즈>


그는 “개발사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게임회사들은 이런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회사들을 필두로 한국 게임회사들은 대부분 게임의 과금체계를 부분유료화 방식으로 내놓는다.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게임 내 물품을 판매해 매출을 올린다. 

대개 원하는 물품을 지정해서 구매할 수 없고 확률적으로 출연하게끔 구성하는데 이 확률이 매우 낮은 탓에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이 도박 같다’는 반응을 나타낸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일부 물품은 등장 확률이 0.00006% 밖에 되지 않는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해 게임회사들이 내놓는 논리도 아쉽다.

세계보건기구는 ‘게임’ 혹은 ‘게임사용’이 아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등재하겠다는 것인데 게임회사가 여기에 반발하는 것은 이용자들이 중독될 만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엔씨소프트와 네오위즈는 ‘게임은 문화입니다. 질병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대놓고 질병 등재에 반대하고 있다. 알코올중독을 문제 삼았더니 ‘술은 문화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이용자는 분명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결정과 별개로 게임회사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 뒤 건전한 게임을 개발하고 게임회사 차원에서 게임중독을 예방,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게임은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높을 것이다. 그것이 이용자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공감을 사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게임회사들, 게임중독 질병분류 반발에 결정적 2%가 부족하다

▲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네오위즈 등은 각각 페이스북에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중독 질병 등재에 반대한다는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재팬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최고경영자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세계보건기구의 결정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게임중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소니의 기준에 맞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궁 대표 말대로 게임몰입은 원인이 아닌 현상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회사들이 게임중독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게임회사들도 소니처럼 게임중독을 둔 대응책을 마련하며 반대의견을 내면 힘이 더 실리지 않을까? [비즈니스포스트 임재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