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락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 등 재정정책을 활용해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은행도 정부와 보조를 맞춰 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와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를 고려하면 당분간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관측이 좀 더 우세하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12일 국내외 경제연구기관과 금융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국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준디플레이션의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저물가와 경기 부진이 상호작용해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에 준하는 상태가 장기화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재정지출 확대기조를 유지하고 금리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동철 금융통화위 위원은 “지나치게 낮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할 시점”이라며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처럼 재정 확대와 함께 금리 인하를 단행해 경기를 부양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온 이유는 경제상황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8년 4분기보다 0.3% 줄며 10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소매판매와 설비투자도 올해 들어 모두 둔화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성장률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추정치를 3.3%로 잡으며 1월에 내놨던 추정치 3.5%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 중앙은행들은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시행했다. 말레이시아와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세계 경제성장률 둔화세에 대응하기 위해 각각 7일과 8일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인하에 다소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경기 전망 및 물가 전망, 금융 안정상황을 살필 때 현재로서는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9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결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도 급격한 경기 추가하락 우려가 높지 않다며 시장상황을 관망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증권업계도 당분간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기준금리 1.75%는 주요 신흥국 기준금리보다 크게 낮아 추가로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는 여유가 적다”며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지 않는 한 단기간에 금리 인하를 시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바라봤다.
한국 기준금리가 현재 2.25~2.50%인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은 상황도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다.
신 연구원은 “과거 한국과 미국 기준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에 나서기 전에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선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국은행도 본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인하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듭되는 압박에도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한국은행 등의 금리 동결기조가 앞으로 경기회복 전망에 따른 것이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금리인하로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남아있다. 특히 다시 고조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에도 복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언론과 국내외 투자금융(IB)업계는 미중 무역갈등이 악화하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고용상황이 나빠질 수 있어 연방준비제도 등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것으로 전망한다.
CNN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연방준비제도가 결국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