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국제해사기구의 선박 연료유 황함량규제 시행을 앞둔 시장 변화에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24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저유황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발맞춰 새 설비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벙커씨유의 수요까지 공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의 환경규제가 시행되더라도 저유황유를 연료유로 쓸 수 없는 노후 선박들이 많다”며 “기존 벙커씨유의 수요가 계속 있다면 그 시장을 노리는 것도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제해사기구는 2020년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함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낮추는 규제를 실시한다. 선박회사들은 기존에 연료유로 활용하던 고유황 벙커씨유 대신 가격이 1.5배 높은 저유황유를 써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노후 선박들은 저유황유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설비가 마련돼있지 않아 벙커씨유를 계속해서 연료유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기존 벙커씨유를 쓰면서도 규제를 지키려면 선박용 황산화물 저감장치인 ‘스크러버’가 필요하다.
노후 선박들을 보유한 선박회사들뿐만 아니라 저유황유 재고 확보를 위한 투자가 부담스러운 선박회사들도 스크러버를 선박에 설치해 기존 벙커씨유를 연료유로 활용하며 국제해사기구의 규제에 대처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함형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20년까지 2천 대가량의 선박이 스크러버를 장착할 것이며 2025년까지 그 수가 5천 대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은 환경규제에 따른 저유황유의 시대에도 벙커씨유시장이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SK이노베이션에서 원유 무역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벙커씨유시장 공략의 선봉에 섰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21일 해운업계 및 조선기자재업계와 스크러버 설치 상생펀드를 조성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상생펀드는 현대상선이 보유한 노후 컨테이너선박 19척의 스크러버 설치 비용 1500억 원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우선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대출을 통해 600억 원을 현대상선에 지원한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디섹, 파나시아, 현대종합상사, 현대글로비스 등 투자자들은 450억 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조성해 나머지 비용을 충당한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150억 원을 부담하고 멀티에셋자산운용이 나머지 펀드자금을 마련한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 선박회사의 스크러버 설치를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SK이노베이션 정유사업의 구조상 벙커씨유 생산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기준으로 정유 자회사인 SK에너지와 SK인천석유화학을 합쳐 하루 121만5천 배럴의 원유를 정제한다. 이는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를 포함한 정유4사의 일일 정제량 가운데 37.4%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 서석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사장. |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저유황유를 포함한 고부가 석유제품 생산량의 척도인 고도화율이 23.7%에 그친다. 국내 정유4사 가운데에서는 가장 낮고 글로벌 정유사들의 평균 41.3%에도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SK이노베이션의 벙커씨유 수요 대응전략은 현재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고도화율이 낮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SK에너지를 앞세워 2020년 말 가동을 목표로 탈황설비(VRDS)를 짓고 있다. 원유 찌꺼기인 감압잔사유를 활용해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설비다.
SK이노베이션은 다가올 저유황유 시대에 저유황유와 벙커씨유 양쪽의 수요에 모두 대응하려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탈황설비 투자뿐 아니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통해 해상 벙커링으로 생산하는 저유황유의 수요를 단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해상 벙커링은 대형 선박을 유류 탱크로 활용해 바다 위에서 연료유를 생산 및 보급하는 방식이다. SK트레이닝인터내셔널은 싱가포르 앞바다에서 대형 유조선을 임차해 저유황유를 블렌딩(원유를 정제하는 것이 아니라 석유제품 조합을 통해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하고 있다.
해상 벙커링 방식은 선박회사들의 일반적 저유황유 수요뿐 아니라 해상에서 일회성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어 앞으로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