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고시원 거주자들을 위한 주거안정을 위해 내놓은 대책들이 취지와 달리 오히려 취약층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가 채광창과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고시원 주거기준을 강화하면서 고시원 비용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고시원을 떠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고시원 대책 놓고 "취약층 부담만 키운다" 불만도 커져

▲ 서울시 한 고시원 내부. <연합뉴스>


주거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홈리스 주거팀' 관계자는 22일 "서울시의 고시원 지원 정책은 전시행정의 표본이자 진정성 없는 대책"이라 비판했다.  

서울시는 노후 고시원 거주자들의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방침에 따라 앞으로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고시원은 방 한 개에 최소 전용 면적 7제곱미터 공간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밖으로 난 채광창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신축 고시원에는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고 고시원 밀집지역에는 공유공간도 두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해 올해 15억 원의 지원예산을 책정했다. 

고시원이 사회취약층의 주요 거주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주거 기준 및 대책 마련이 미흡해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취지다.   

서울시는 국내 고시원 1만1892개 중 총 5840개가 서울에 몰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가 시내 5개 고시원을 뽑아 조사한 결과 고시원 실면적은 4제곱미터~9제곱미터였다. 고시원·고시텔의 평균 월세는 33만4천 원으로 주거비도 열악했다.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도 미흡해 2018년 11월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촉구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채광창과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고시원 지원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시원 거주자들은 서울시의 지원방안이 오히려 고시원 비용만 높이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낸다. 한 고시원 거주자는 “채광이나 환기 등을 위해 정말 창이 필요하다”며 “다만 창이 있는 게 좋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돈 때문에 창 없는 방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고시원은 창이 있는지 없는지, 창이 있어도 외부로 난 창인지 복도에 난 창인지에 따라 방세가 크게 차이 난다.

서울시가 내놓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고시원 건물주가 창 있는 방으로 바꾸게 되면 내부 공사 및 추가 시설비 명목으로 방세를 더 올려받아야 한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결국 오르는 집세를 감당 못해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등 더 열악한 거주지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고시원 밀집지역에 거주자들의 소통을 위한 공유공간을 설치한다는 방안도 실효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한 고시원 거주자는 “고시원 거주자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든다 해도 실제 얼마나 참여할지 의문”이라며 “거주자들은 대개 고시원을 잠시 머물다 떠날 곳으로 생각하기에 커뮤니티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고시원들은 식당이나 휴게실 등 공동공간을 갖췄지만 거주자들이 관계 맺기를 부담스러워 해 앞 사람의 이용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열악한 고시원은 도태되는 게 맞다”는 태도를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스프링클러를 갖추고 창을 마련하는 등 시설이 좋아지면 입실료가 늘어날까봐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며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5만 원 상당의 주택 바우처제도를 고시원 거주자 1만명에게 지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시원 내부에 공유공간을 마련해 거주자들의 소통과 교류를 늘리는 ‘고시원 리빙라운지’사업을 놓고 이 관계자는 “고시원 밀집지역에 먼저 설치할 것”이라며 “세부적 운영방안도 차차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의 정책은 최소한의 안전과 주거인권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며 “고시원 건물주도 사업성보다도 안전과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은 서울시 지원대책을 두고 당장 저렴한 방세를 찾아 하루하루 살아가야하는 주거취약층의 현실을 더 고려해 세밀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홈리스 주거팀' 관계자는 "고시원 거주자들에 대한 지원보다 고시원 거주자들이 고시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맞다"며 "현실적으로 창가가 아닌 내실 중심으로 운영되는 고시원이 다수인데 창문 설치를 어떻게 의무화 할 것인지, 기존 고시원과 신규 고시원에는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서울시가 분명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