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가 한층 무게감 있는 인물을 KB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
KB금융지주에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등장한다면 ‘삼수’ 끝에 실현되는 셈이다.
▲ 백승헌 변호사.
29일 KB금융그룹 노조협의회에 따르면 노조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는 7개 계열사의 노조 협의체다.
KB금융지주를 비롯해 국내 금융지주는 일반기업과 달리 지배구조상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주인 없는 회사’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 선임 과정이 일반기업보다 한결 중요하다. 사외이사가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는 2017년 11월과 지난해 3월에도 각각 하승수 변호사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등 진보적 인사를 주주제안 형식으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지만 두 번 모두 주주총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조가 이번에 선택한 인물은 백승헌 변호사다.
백 변호사는 이전에 추천한 인물보다 한층 무게감이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백 변호사는 연세대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3세부터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연소 변호사로 기록을 세웠다.
2006년에는 40대에 최연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으로 취임해 4년 동안 연임했다. 당시 촛불집회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사건, 미네르바사건 등 굵직하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의 변호를 진두지휘했다.
2009~2013년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수수사건을 맡아 1~3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아내기도 했다.
특히 금융지주들이 비교적 친정부로 분류되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지난해 금융권 사외이사들이 대거 바뀌었는데 친정부 인사가 크게 늘었다. KB금융지주에서도 당시 사외이사 3명이 새로 선임됐는데 이 가운데 2명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동문인 경기고 출신이었다.
백 변호사는 과거 경력 등을 볼 때 문재인 정부와 접점이 많은 편이다. 백 변호사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력한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다만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KB금융그룹 노조협의회는 이번 주주제안을 위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민변, 한국노총 등 4개 단체에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의뢰했고 민변에서 백 변호사를 추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KB금융그룹 노조협의회가 주주총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을 때 주요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지지를 얻고서도 부결됐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의 지분구조로 볼 때 외국인 주주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KB금융지주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9.62%)이고 JP모건체이스(6.16%)와 우리사주조합(0.55%)이 뒤를 잇고 있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때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외국인투자자가 KB금융 주식의 7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경영 불안정 등을 이유로 노조의 경영참여를 꺼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글로벌 의결권자문사 ISS는 지난해 3월 권 교수가 금융회사를 포함한 상장회사 이사회에서 일한 경력이 없어 이사로서 성과를 평가할 수 없는 점을 반대 권고의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권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KB금융지주의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계획도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2017년 11월에도 하승수 변호사의 경력을 놓고 금융지주 이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것으로 평가했다.
KB금융그룹 노조협의회 관계자는 “KB금융그룹 계열사 노조 7곳이 의견을 모아 KB금융지주 이사회에서 독립적 지위를 지니고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후보로 제안했다”며 “앞으로 여러 절차가 남았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