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자금지원이 엄격해지고 있다.
은행들이 SPP조선에 대한 추가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경남기업, 성동조선해양, 대한전선 등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기업들이 채권은행들로부터 추가자금을 지원받은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경우 수익성에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박근혜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반부패 전쟁’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은행들, 부실기업 자금지원 요청 거부하나
경남기업은 성완종 회장이 신한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 경영권과 지분을 포기하는 내용의 각서를 냈다고 19일 밝혔다. 성 회장은 이 각서에서 “회사의 경영상황에 책임을 질 테니 채권단도 이런 결단을 받아들여 회사의 회생을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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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병 신한은행장 |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이 각서를 받았지만 18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경남기업 추가지원과 관련해 “논의 뒤 방향을 정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신한은행은 경남기업 채권 가운데 15.9%를 보유하고 있는데 채권금액이 1896억 원에 이른다.
경남기업은 부채가 총자산보다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경남기업은 상장폐지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피하기 위해 채권단에 추가 출자전환 1천억 원과 신규자금 1천억 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남기업 채권단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경남기업의 자금지원을 오는 20일 45개 채권기관이 모인 회의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신한은행 등 8개 주요 채권기관은 경남기업 지원에 대부분 부정적 의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외환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5개 은행은 SPP조선에 대해서도 추가자금 지원을 최근 거부했다. 이들 은행은 SPP조선이 2년 연속 적자를 내고 최근 추가자금 지원을 요청하자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채권단에서 발을 뺐다.
성동조선해양도 채권단자율협약 상태에서 4200억 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채권단에 요청했으나 자금지원이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NH농협은행은 성동조선해양 채권의 5.99%를 보유해 채권단협의회에 참여하지만 SPP조선 추가자금 지원을 거부했던 것처럼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남기업, SPP조선, 성동조선해양에 최근 상장폐지 위기에 빠진 대한전선까지 자금지원 요청을 모두 들어주면 채권단이 3월에 내야 할 돈만 1조2550억 원”이라며 “은행들은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해도 회생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부실기업 지원에 허리 휜 시중은행들 태도 바꾸나
은행들은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자금 지원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전에 채권단자율협약을 맺었거나 워크아웃중인 부실기업에게 일단 추가자금을 투입하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은행들은 부실기업 채권단이 져야 할 부담이 지나치게 커져 추가자금을 지원하기 힘들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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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
경남기업은 3번의 워크아웃을 경험하면서 이미 2조2천억 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됐다. SPP조선과 성동조선해양은 2010년 채권단자율협약을 맺고 지금까지 각각 6천억 원과 1조6천억 원을 지원받았다.
은행들은 추가자금을 지원해도 기업이 결국 회생하지 못할 경우 손실이 더 커져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은행들은 지난해 STX그룹, 모뉴엘, 동부건설에서 잇달아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면서 4분기에만 1조 원 이상의 손실을 냈다.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STX그룹과 동부그룹 주채권은행으로 추가손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 때문에 2014년 목표순이익 6천억 원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약 2천억 원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지원을 해야 할지 은행 입장에서도 알기 힘들다”며 “은행도 재무구조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부실기업에 대해 과감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부패척결’이 은행 태도 변화 불러왔나
박근혜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반부패전쟁을 펼치면서 은행들이 부실기업에 추가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남기업은 자원외교 비리의혹 혐의로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감사원도 경남기업이 지난해 워크아웃을 밟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정황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경남기업 채권단 관계자는 “경남기업이 검찰과 감사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을 결정하기에 부담이 크다”며 “추가자금지원이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대한전선은 27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던 사실이 지난해 말 밝혀졌다. 대한전선 채권단은 이때 2천억 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SPP조선도 이낙영 SPP그룹 회장이 자율협약 시기에 3200억 원의 자금을 빼내 다른 계열사에 부당지원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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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구 우리은행장 |
부실기업을 낳는 데 오너들의 부패도 작용한 만큼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지원은 결국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부패전쟁의 취지와 맞지 않아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은행 등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은행들의 경우 여전히 부실기업 추가자금 지원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의 태도변화가 반부패전쟁과 맥이 닿아있다는 보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무역보험공사, 서울보증보험은 여전히 SPP조선 채권단에 남아 4850억 원 규모의 추가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는 성동조선해양 채권단협의회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보유한 채권만 해도 전체의 88.8%에 이른다. NH농협은행이 자금지원을 거부하더라도 세 금융기관이 나머지를 감당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부실기업 자금지원으로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받을 경우 민영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금융기관들도 부실기업에 퍼붓기식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더 큰 부실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