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아산 연암 청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그룹 창업주들의 호이다. 또 이들 그룹에서 운영하는 공익재단의 이름들이기도 하다.
한국기업은 외국처럼 오너의 이름을 따서 회사이름을 짓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창업주의 이름은 재단으로 면면히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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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국내 대그룹들은 대개 창업주의 호를 붙인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30대 그룹 가운데 공사 등 개인이 소유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 20곳 가운데 SK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CJ그룹만 공익재단에 오너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오너 이름을 채택한 비율이 80%나 된다.
대기업 재단 가운데 공익사업비 집행규모가 가장 큰 곳은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정몽구재단이다.
정몽구재단은 30대 그룹 공익재단 가운데 유일하게 오너의 호가 아닌 이름을 직접 붙인 재단이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2013년 기준 395억 원의 공익사업비을 집행해 사업비 집행이 가장 많았다.
정몽구재단은 2007년 해비치공헌문화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정몽구 회장이 2011년 개인기부 사상 최대 규모인 5천억 원의 주식을 기탁한 뒤 이름을 정몽구재단으로 변경했다.
정몽구재단이 재단 이름을 바꾼 것은 현대가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원래 현대가의 공익재단은 1977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설립한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최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인 아산을 따서 재단 이름을 지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아산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의 동생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11년 8월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KCC,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등 범현대가의 힘을 모아 5천억 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 이는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많았다.
정몽구 회장은 부친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를 딴 재단을 정 의원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재단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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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
정 회장은 아산나눔재단 설립 직후 단독으로 5천억 원을 해비치재단에 기부하고 이름도 정몽구재단으로 바꿨다.
삼성그룹은 이병철 창업주의 호를 딴 호암재단을 1997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호암재단에 삼성그룹뿐 아니라 신세계그룹, 새한그룹, 한솔그룹, CJ그룹 등 범삼성가가 모두 참여했다. 호암재단은 1990년 이병철 창업주를 기리기 위해 창설된 호암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으며 학술과 연구사업 지원, 호암생가 개방과 운영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밖에도 1965년부터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으며 1982년 삼성생명공익재단, 1989년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해 목적별로 공익사업을 하고 있다.
LG그룹은 창업주와 오너 일가의 이름을 딴 재단을 두 곳 운영하고 있다. 1969년 구인회 창업주가 호를 따서 연암문화재단을 설립해 지금은 LG연암문화재단이라는 이름으로 문화 학술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언론인 양성과 언론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LG상남언론재단을 설립했다. 상남은 구 명예회장의 호다. 이로써 LG그룹은 드물게 초대와 2대 회장의 호를 각각 딴 재단을 운영하게 됐다.
LG그룹에서 분리해 나온 GS그룹은 LG그룹 공동창업주인 허만정 창업주가 아닌 오너 2세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의 호를 딴 남촌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사정이 비슷한 LS도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호를 딴 송강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박태준 창업주의 호를 딴 포스코청암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청암재단의 전신은 1971년 박태준 회장이 설립한 제철장학회다. 2005년 장학사업뿐 아니라 포스코청암상을 제정하며 학술문예사업을 확대하고 이름을 포스코청암재단으로 바꿨다.
포스코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준공기업으로 더 이상 개인소유의 기업이 아니다. 그렇지만 박태준 창업주의 장남인 박성빈 사운드파이프코리아 대표가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에 올라있어 재단 이사직을 대물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조중훈 창업주의 호를 따라 정석물류학술재단을 운영하고 있고,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주의 호를 붙인 두산연강재단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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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
금호그룹‧동부그룹‧대림산업‧부영‧OCI그룹 등도 모두 창업주의 호를 따라 각각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박인천)‧동곡사회복지재단(김진만)‧수암장학문화재단(이재준)‧우정문화교육재단(이중근)‧OCI송암문화재단(이회림)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호를 딴 임당장학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오너 일가 이름을 재단에 붙이지 않은 곳들도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문화재단, CJ그룹은 CJ나눔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오너 일가 이름 대신 그룹 이름을 그대로 재단 이름에 사용한 것이다. SK그룹은 행복나눔재단으로 오너 이름과 그룹 이름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
롯데그룹의 경우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출생지가 울산의 삼동면이다. 오너의 호가 아닌 고향의 이름을 딴 독특한 경우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