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3사가 선박 건조에 쓰이는 후판 가격 협상을 앞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을 놓고 매년 철강업계와 씨름을 해왔다. 이번에도 오르면 벌써 네 반기째 인상인 만큼 방어벽을 단단히 칠 것으로 보인다.
 
흑자 갈 길 바쁜 조선3사, 철강사와 후판가격 협상 앞두고 긴장

▲ 선박 건조에 쓰이는 후판.


29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사들과 철강사들은 내년 상반기에 공급될 후판 단가를 결정하기 위해 12월부터 협의에 들어간다.

철강업계 맏형 격인 포스코가 연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어 본격적 협상은 12월 말에서 내년 초 사이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통상 포스코가 협의를 끝내면 다른 업체들도 이를 기준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기 때문이다.

후판은 선박을 만들 때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이다.

선종에 따라 제조 원가의 15~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보니 조선사들이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기에 한 번꼴로 가격 협상이 진행되는데 매번 후판 가격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는 철강업체와 내리려는 조선업체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이번에도 철강회사들은 가격 인상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손해를 보며 후판을 팔다가 올해 하반기에 가격을 올리고나서야 마진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박용 후판은 10년 전 톤당 100만 원을 넘었지만 조선업황이 어두워지면서 가격이 반토막났다

철강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하반기까지 후판 가격을 3차례 연속으로 인상했다. 현재 정확한 단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톤당 60만 원 중후반대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시 인상이 결정되면 70만 원대 수준까지 오르게 된다.

철강회사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지 안맞는 장사를 해온 만큼 가격 인상이 아니라 '정상화'라고 부르는 게 맞다"며 "조선업 불황을 고려해 후판값을 3년 동안 동결하면서 적자가 누적됐다"고 말했다. 이제 조선업이 회복세에 들어선 만큼 그동안의 손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10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조선용 후판은 수요가 급격이 늘어나 물량이 부족한 상황까지 갈 수 있다"이라며 "가격을 유지하든지 인상하는 쪽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사들은 업황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제 막 숨통이 트인 정도일뿐 원가 부담을 추가로 감당할 만큼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조선사들은 사업 특성상 선박을 주문받고 인도하기까지 적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가까이 걸린다. 지금 건조하는 배들은 과거 낮은 가격에 수주한 배들이다 보니 당시 예상했던 가격보다 비싼 후판을 쓰게 된다는 뜻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선박 수주 가격이 오르는 속도보다 원가가 인상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며 "고정비 절감이 절실한 상황에서 후판 가격이 오르면 고스란히 수익성 하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삼성중공업은 3분기에 영업손실 1273억 원을 냈다고 밝히면서 손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로 후판 등 강재 및 기자재 가격의 인상분 1770억 원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었다.

조선사별로 건조 선종의 비중이 달라 정확한 영향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이 상대적으로 더 후판 가격에 예민할 수 있다. 후판이 많이 쓰이는 유조선 비중이 경쟁사들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후판 가격이 10만 원 정도 상승했을 때 현대중공업그룹은 3천억 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1400억 원~1800억 원 가량씩 원가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후판 가격 오름세가 길게 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우세하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후판 가격은 원재료인 철강석 가격이 오르면서 지속적으로 올랐는데 내년에는 철광석 가격의 약세가 예상되는 만큼 후판 가격 인상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내년에는 한국 조선업체들의 후판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철광석 수요 둔화 등 대외적 상황에 따라 가격 하락 압력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후판값 협상이 '인상'으로 결론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