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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가 개봉 4주 만에 약 370만 관객을 동원했다. 청소년관람불가 외화가 300만 명을 돌파한 것은 킹스맨이 처음이다.
킹스맨은 3월 첫주 현재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있으며 주요 예매사이트에서 예매율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주말을 기점으로 4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킹스맨은 매튜 본 감독의 신작으로 만화가 원작이다. ‘007시리즈’처럼 첩보 액션 장르영화다. 집단살육과 잔인한 폭력신도 많아 19금 판정을 받았다.
B급 영화 정서가 가득한 가벼운 오락영화로 보는 게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관람불가판정은 킹스맨에게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외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은 2006년 개봉한 영화 ‘300’이다. 누적 관객 수 292만 9561명을 기록했다.
19금 판정을 받으면 흥행에 제약을 받는다. 청소년 관객층이 이탈하는 데다 선혈이 낭자한 폭력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성인관객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킹스맨은 비수기 극장가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했을까? 잔인한 듯 잔인하지 않은, 복고인 듯 복고 아닌 영화이기 때문이다.
킹스맨을 관통하는 두가지 키워드는 복고와 첨단이다. 스파이 액션물은 최첨단 장비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첨단 장비들에 복고, 그것도 영국식 복고를 입혔다는 점이다.
킹스맨은 첩보 액션물들이 그렇듯 첨단무기는 물론이고 스마트카와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등 IT장비들을 등장시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원격조종이 가능한 스마트한 무인자동차는 영국 런던의 허름한 뒷골목을 질주한다.
요원들의 비밀회의는 한눈에도 전통과 역사가 느껴지는 런던 중심가의 테일러숍 안쪽 깊숙한 곳에서 이뤄진다. 방 안에 고풍스러운 앤틱테이블이 놓였고 벽은 명화들로 가득차 있다.
요원들의 나이든 보스는 영국식 수트를 제대로 갖춰 입고 1800년대산 최고급 와인을 혼자 마시고 있다가 회의를 주재한다.
그가 안경을 끼는 순간 회의실 안에 요원들의 모습이 비친다. 구글글라스 같은 스마트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가상회의다. 벽면을 터치하는 순간 최첨단 모니터가 등장해 세계 어느 곳과도 연결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첨단과 복고의 이런 기묘한 조합이 젠틀맨 스파이를 탄생시킨 비결이다.
19~20세기 영국식 젠틀맨십, 더 거슬러 올라가 중세 기사도 정신에 대한 향수이면서 동시에 미국식 IT세상에 대한 동경을 극대화한 것이다. 최정예 요원에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 이름 랜슬롯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다.
플롯은 단순하다. 전설적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 뒷골목 망나니로 살아가는 에그시(탤런 애거튼)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요원선발에 참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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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튜 본 감독 |
스승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영웅으로 키워지는 과정을 통해 입문과 통과의례, 시련 극복과 성취라는 다소 뻔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19금 영화의 폭력성에서 재미를 찾으려는 관객이라면 실망감이 클 것으로 보인다. 본 감독은 집단살육 장면을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카니발의 한 장면으로 표현해 기발한 재능을 과시한다.
핏빛 가득한 잔인한 장면이 놀이가 되는 순간 스릴넘치는 액션물도 한순간 코미디가 되고 만다.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집단폭력 신도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야 마땅한 장면인데도 배경음악과 출연진들의 경쾌한 움직임 때문에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방불케 한다.
첩보영화는 선과 악의 구도로 짜인다. 착한 영웅이 악당을 멋지게 해치우는 뻔한 구성이다.
21세기는 아직 ‘적당한’ 악당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가 악의 근원이었다면 21세기에 테러집단이거나 가끔 북한과 같은 특정국가가 이 역할을 맡는다.
킹스맨이 이번에 제물로 삼은 악당은 흥미롭게도 IT기업인이다. 사무엘 잭슨이 연기한 IT억만장자 발렌타인은 물론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정상인은 아니다. 사용가능 한계에 이른 지구를 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인간들을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망상으로 가득한 인간이다.
가볍고 다소 정신없는 돈 많은 사이코일 뿐이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발렌타인은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모바일을 지배하는 자,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리라’.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