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53)는 공기업 25년차 부장이다. 그는 최근 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25년 근속을 맞아 회사에서 200만원의 해외여행경비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팔순을 맞이한 어머니에게는 종합건강검진을 받게 해드렸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족 무료건강검진 덕분이었다. 다음주에 있을 어머니의 팔순잔치날에는 유급 경조휴가를 신청해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내년에는 딸이 대학에 입학하지만 걱정이 없다. 사내 근로복지기금에서 자녀 학자금을 300만원까지 무상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은 학자금 무이자 융자로 메꿀 생각이다. 그는 200만원 가까이 쌓인 복지 포인트로 대학생활을 시작할 딸에게 옷을 사주었다.


반면 B씨(55)는 중소 무역업체에 다니고 있다. IMF 이후 구조조정의 칼바람 때문에 대기업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평소 관계가 원만했던 협력업체 쪽에 자리가 있어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올해도 그의 연말은 쉽지 않다. 전세계적 불황과 엔저현상으로 수출 경기가 좋지 않아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고 있지만, 좋지 않은 회사분위기에 눈치가 보여 유급은커녕 무급 휴가도 내기 어렵다.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일을 그만둔 아들의 학자금 대출도 상환해야 하고, 혼기가 꽉 찬 딸의 결혼비용도 걱정된다. 대기업을 나온 이후로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은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공기업이 매년 공채 때 수백대일의 경쟁률을 보일만큼 선호하는 직장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부 공기업의 복리후생은 일반 기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공기업 부채가 566조원에 달할 정도로 방만한 경영을 하면서 직원들은 1인당 연간 천만원이 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사원을 위한, 사원에 의한, 사원의 공기업  
▲ 과도한 복리후생으로 논란이 되는 한국석유공사

실례를 살펴보면 자녀 특목고․자사고 수업료 전액 지원(한국석유공사), 대학생 자녀에게 반기 150만원의 교육비 지원(인천공항공사), 근로자의 날 70만원 보너스 지급(강원랜드), 부모 회갑시 사흘, 칠순시 이틀 특별휴가 제공(한국원자력의료원), 본인 및 가족 의료비 500만원 한도내 지원(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공무상 부상․순직자의 부양가족 특별 채용(한국농어촌공사․한국환경공단) 등 기관별로 다양한 복리후생이 보장된다. 모두 일반기업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것들이다.


대대적인 공기업 개혁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지난 11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는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리후생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공무원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공기업이 젊은이들에게 인기 없는 직장이 되도록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지혜택은 낙하산 인사를 무마하기 위해 '당근책'으로 여러 혜택을 주었던 데 근본원인이 있다. 지난 4일 현명관 마사회장 취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사회 노조는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으나, 1시간도 안돼 투쟁을 포기했고 현 회장은 취임했다. 노조 쪽은 "노조와의 면담에서 마사회의 여러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현 회장이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주변에서는 복지혜택에 대한 이면거래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낙하산 인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