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은 유독 안주를 경계한다. 저서에서 ‘안락은 스스로를 안락사하도록 한다’는 칭키즈 칸의 신념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승강기회사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제 ‘우물 안 1등’에 만족해서는 성장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장병우의 절박함, "현대엘리베이터 우물 안 1등 만족하면 안락사"

▲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6일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장병우 사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글로벌 진출을 꼽는다. 국내 승강기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세계 5위 승강기회사인 일본 히타치가 18년 만에 한국을 다시 공략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승강기 입찰에도 참여한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지상 105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이다. 초고층 빌딩에 요구되는 초고속 승강기는 고부가가치일뿐 아니라 수주할 경우 높은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입찰에 공을 들이고 있었는데 막강한 경쟁자를 하나 더하게 된 셈이다. 히타치의 최대 강점은 초고속 승강기 기술력이다. 6월에는 중국 광저우 CTF파이낸스센터에 세계 최고속인 초속 21m의 승강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승강기의 경우 현대엘리베이터의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부지를 사는 데 들인 돈이 10조 원인데 이 건물 승강기 수주를 외국기업에게 줬다간 비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 사장이 위기로 느낄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실은 국내시장이 비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승강기회사들은 올해 들어 한국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계 오티스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연구개발센터와 첨단생산시설 착공에 들어갔다. 일본 미쓰비시도 송도국제도시 첨단산업클러스터 부지에 300억 원을 투자해 제조시설과 연구개발시설을 짓는 중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동안 내수시장에 기대 성장해왔다. 10년째 국내에서 1위를 유지하며 독주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43%이고 그 뒤를 독일계 티센크루프(24.7%), 미국계 오티스(10.9%), 일본 미쓰비시(3%) 등 해외기업이 잇는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세계 순위는 9위에 그친다. 

초고속 승강기 수주에서 해외기업들에 번번이 밀리고 있는 점도 장 사장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분속 1080m(초속18m)기술을 개발한 지 한참됐지만 지금까지 설치한 가장 빠른 승강기는 부산국제금융센터에 설치된 초속 10m 승강기가 전부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역시 핵심인 세계 최장 더블데크(하나의 승강로에 두 개의 승강기)엘리베이터는 오티스가 차지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초고속 승강기 수요가 아직 많지 않은 국내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만큼 수주경험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초고층 빌딩 승강기 설치를 따내려면 수주이력이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글로벌기업들을 제치고 시공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초고층 빌딩규모는 2020년 1700억 달러(194조 원가량)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초고속 승강기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 역시 도시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초고층 건물이 늘어나는 추세다. 
 
장병우의 절박함, "현대엘리베이터 우물 안 1등 만족하면 안락사"

▲ 현대엘레베이터의 초고속 승강기가 설치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장 사장은 국내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에서 시공경험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현대엘리베이터를 2030년까지 글로벌 7위 승강기 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그는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터키에서 쿠테타가 터진 상황에서도 터키를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해외법인을 9곳으로 늘렸다. 

장 사장은 현대그룹에서 손꼽히는 해외영업통이다. 40년을 넘는 회사생활 가운데 39년을 해외영업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했다.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아직 세계 9위이며 국내 1위라는 사실이 오히려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며 “자만은 개인이나 회사에 가장 지독한 병이고 우물 안에서 1등을 해봤자 소용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장 사장은 특히 중국어를 직접 배워 현지 워크숍에서 중국어로 연설을 할 정도로 중국사업을 최우선으로 챙기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엘리베이터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매년 설치되는 승강기만 60만 대로 전 세계 수요의 70%를 차지한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장 사장은 현재 중국을 ‘넥스트 홈마켓’으로 정해 집중공략하고 있다”며 “내년 3월에는 중국 상하이에 신공장도 착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 사장은 평소 “진화론에 따르면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한다. 현대엘리베이터도 변화하는 글로벌시장의 흐름에서 생존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