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의 수첩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에서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 채택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6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명의 36차 공판을 마무리하며 “안 전 수석의 수첩에 기재된 내용과 같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피고인이 말을 했다는 점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과 대화내용 진정성과 관계없이 정황증거로는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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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추후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등을 수첩에 적은 것이고 메모내용에 안 전 수석의 개인적인 판단이 첨가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황증거는 범죄사실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추측하게 하는 증거로 범죄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직접증거에 비해 증거효력이 떨어진다.
박영수 특검은 안 전 수석의 수첩을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청탁이 오간 핵심증거로 제시했는데 김이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앞서 특검은 “수첩을 통해 독대 당시 미르재단, 승마지원과 함께 면세점 특허, 중간금융지주사 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문제 등 여러 얘기가 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독대 때 금품수수 및 뇌물공여와 명시적 청탁 혹은 최소한 묵시적인 청탁이 이뤄졌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수첩이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 채택됐기 때문에 독대 때 특검이 주장하는 대화들이 오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추가로 증거나 증언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측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직접증거보다 증거효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정황증거로 채택됐다는 것은 재판부가 청탁이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더 들여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뇌물사건은 그 특성상 직접증거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여러 정황증거를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