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상영중단 요구와 형사고발에 이어 영화제 참석·홍보 일정까지 취소되면서 창작의 자유와 명예 보호의 경계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대응은 당사자의 권리지만, 정치적 공방이 작품의 상영과 홍보 활동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 사전심의 위헌 결정' 30년을 맞았음에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5일 정치권과 문화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지난달 23일 개봉한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공방이 상영중단·국감 출석 요구와 형사고발로 이어지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에서 먼저 구분할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 문제이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10월4일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할 수 없도록 한 당시 영화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행정권이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내용을 심사해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로 본 것이다.
헌재는 같은 결정에서 작품이 공개된 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법원이 상영금지 가처분을 내리는 사법적 규제는 사전검열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은 국가가 작품 공개 전에 내용을 심사해 발표 여부를 통제하는 경우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법적 대응과 별개로 주목할 부분은 정치·사회적 공방 속에서 작품의 공개가 실제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최근 상황과 관객·참석자의 안전을 고려해 6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과 7일 야외무대인사를 취소한다고 2일 밝혔다. 영화제 사무국도 제작사의 요청에 따른 취소라고 설명했다.
앞서 암살자(들) 주연 배우 이민호가 참여하는 영화제 행사 '액터스 하우스'와 5일 예정됐던 부산영상위원회의 시민 무료 시사회도 취소됐다. 영상위원회는 최근 상황과 시민 의견을 검토한 결정이라면서 작품 내용이나 특정 입장에 대한 판단·지지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허진호 감독의 극영화다. 국민의힘과 일부 단체는 영화가 극중 인물들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권력기관의 사건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실제 사건과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쪽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공개하며 제작진의 사과와 상영중단을 요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버지가 맞을 흉탄을 어머니가 내 대신 맞고 가셨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유 의원은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도 밝혔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불매운동 제안과 신동욱 최고위원의 상영중단 요구에 이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육영재단·박정희학술원도 공동으로 사과와 상영중단을 요구했다. 역사적 사건을 빌려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실제 역사처럼 전달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인에 대한 위협과 행사 취소를 문제 삼았다. 신현영 대변인은 2일 배우 자택 앞 집회 압박 등을 거론하며 유감을 표하고, 정치적 압박으로 창작자·관람자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제작진에 대한 형사고발은 구체적 범죄 성립 요건을 따져야 한다.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허 감독 등 제작진 4명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고인의 명예 훼손뿐 아니라 유족의 사회적 평가도 낮아졌다고 고발인은 주장했다.
허위사실을 이유로 명예훼손 책임을 물으려면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와 허위성, 허위임을 알았다는 고의, 명예 침해 등이 입증돼야 한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설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처벌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대법원은 2010년 드라마 '서울 1945' 제작진의 사자명예훼손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예술의 자유도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구체적인 허위사실까지 보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극은 사실과 허구가 결합되는 특성이 있는 만큼 제작 목적과 실존 인물의 비중, 허구와 사실의 결합 방식, 시청자가 실제 역사로 오해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례에 비춰보면 '암살자(들)' 역시 실제 역사와 다른 설정이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 형사책임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극영화라는 작품의 성격과 영화적 각색 정도, 관객이 해당 설정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 등을 함께 따져야 한다.
형사 절차에서는 고발 주체도 변수다.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여서 공소를 제기하려면 고인의 친족 또는 자손 등 고소권자의 고소가 필요하다. 제3자의 고발만으로는 이를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유족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은 별도의 범죄 성립 요건에 따라 판단된다.
민사상 책임은 형사책임과 또 다른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다. 10·26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 제작사를 상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씨가 낸 소송에서는 1심이 경애·추모 감정 침해를 인정해 배상을 명령했지만 사건은 항소심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조정에는 1심 판결에 따른 가지급금 반환과 영화의 허구적 성격을 알리는 자막 삽입 등이 포함됐다.
국정감사 출석 요구는 형사고발과는 또 다른 쟁점을 낳는다. 허 감독을 불러 영화 내용과 역사적 해석 자체를 따지려는 것인지, 영화 관련 정책·행정을 점검하려는 것인지가 구분될 필요가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영화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국감에 출석한 사례를 근거로 들어 허 감독의 증인 또는 참고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건국전쟁의 경우 김 감독의 출석이 영화 내용 자체가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인정 여부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작품에 대한 비판과 국회의 정책·행정 감시를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남는 대목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1일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에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그 목소리는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품 참여를 이유로 개별 창작자에게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하며 작품 자체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논란의 쟁점은 작품에 대한 비판과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권리구제의 영역, 정치적 공방이 창작자와 관객의 만남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로 모인다. 형사·민사 책임은 각각의 법적 요건에 따라 판단될 사안이지만 상영중단과 불매운동 요구, 국감 출석 요구에 이어 실제 영화 관련 일정까지 잇따라 취소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허원석 기자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대응은 당사자의 권리지만, 정치적 공방이 작품의 상영과 홍보 활동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 사전심의 위헌 결정' 30년을 맞았음에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상영중단 요구와 형사고발, 행사 취소가 이어지면서 법적 권리구제와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암살자(들)' 포스터. <연합뉴스>
5일 정치권과 문화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지난달 23일 개봉한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공방이 상영중단·국감 출석 요구와 형사고발로 이어지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에서 먼저 구분할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 문제이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10월4일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할 수 없도록 한 당시 영화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행정권이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내용을 심사해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로 본 것이다.
헌재는 같은 결정에서 작품이 공개된 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법원이 상영금지 가처분을 내리는 사법적 규제는 사전검열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은 국가가 작품 공개 전에 내용을 심사해 발표 여부를 통제하는 경우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법적 대응과 별개로 주목할 부분은 정치·사회적 공방 속에서 작품의 공개가 실제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최근 상황과 관객·참석자의 안전을 고려해 6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과 7일 야외무대인사를 취소한다고 2일 밝혔다. 영화제 사무국도 제작사의 요청에 따른 취소라고 설명했다.
앞서 암살자(들) 주연 배우 이민호가 참여하는 영화제 행사 '액터스 하우스'와 5일 예정됐던 부산영상위원회의 시민 무료 시사회도 취소됐다. 영상위원회는 최근 상황과 시민 의견을 검토한 결정이라면서 작품 내용이나 특정 입장에 대한 판단·지지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허진호 감독의 극영화다. 국민의힘과 일부 단체는 영화가 극중 인물들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권력기관의 사건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실제 사건과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쪽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공개하며 제작진의 사과와 상영중단을 요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버지가 맞을 흉탄을 어머니가 내 대신 맞고 가셨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유 의원은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도 밝혔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불매운동 제안과 신동욱 최고위원의 상영중단 요구에 이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육영재단·박정희학술원도 공동으로 사과와 상영중단을 요구했다. 역사적 사건을 빌려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실제 역사처럼 전달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인에 대한 위협과 행사 취소를 문제 삼았다. 신현영 대변인은 2일 배우 자택 앞 집회 압박 등을 거론하며 유감을 표하고, 정치적 압박으로 창작자·관람자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제작진에 대한 형사고발은 구체적 범죄 성립 요건을 따져야 한다.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허 감독 등 제작진 4명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고인의 명예 훼손뿐 아니라 유족의 사회적 평가도 낮아졌다고 고발인은 주장했다.
허위사실을 이유로 명예훼손 책임을 물으려면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와 허위성, 허위임을 알았다는 고의, 명예 침해 등이 입증돼야 한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설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처벌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대법원은 2010년 드라마 '서울 1945' 제작진의 사자명예훼손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예술의 자유도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구체적인 허위사실까지 보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극은 사실과 허구가 결합되는 특성이 있는 만큼 제작 목적과 실존 인물의 비중, 허구와 사실의 결합 방식, 시청자가 실제 역사로 오해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례에 비춰보면 '암살자(들)' 역시 실제 역사와 다른 설정이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 형사책임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극영화라는 작품의 성격과 영화적 각색 정도, 관객이 해당 설정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 등을 함께 따져야 한다.
형사 절차에서는 고발 주체도 변수다.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여서 공소를 제기하려면 고인의 친족 또는 자손 등 고소권자의 고소가 필요하다. 제3자의 고발만으로는 이를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유족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은 별도의 범죄 성립 요건에 따라 판단된다.
민사상 책임은 형사책임과 또 다른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다. 10·26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 제작사를 상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씨가 낸 소송에서는 1심이 경애·추모 감정 침해를 인정해 배상을 명령했지만 사건은 항소심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조정에는 1심 판결에 따른 가지급금 반환과 영화의 허구적 성격을 알리는 자막 삽입 등이 포함됐다.
국정감사 출석 요구는 형사고발과는 또 다른 쟁점을 낳는다. 허 감독을 불러 영화 내용과 역사적 해석 자체를 따지려는 것인지, 영화 관련 정책·행정을 점검하려는 것인지가 구분될 필요가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영화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국감에 출석한 사례를 근거로 들어 허 감독의 증인 또는 참고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건국전쟁의 경우 김 감독의 출석이 영화 내용 자체가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인정 여부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작품에 대한 비판과 국회의 정책·행정 감시를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남는 대목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1일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에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그 목소리는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품 참여를 이유로 개별 창작자에게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하며 작품 자체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논란의 쟁점은 작품에 대한 비판과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권리구제의 영역, 정치적 공방이 창작자와 관객의 만남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로 모인다. 형사·민사 책임은 각각의 법적 요건에 따라 판단될 사안이지만 상영중단과 불매운동 요구, 국감 출석 요구에 이어 실제 영화 관련 일정까지 잇따라 취소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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