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RA '폐지' 대신 '수술'로 가닥 잡히나, K배터리 포함 한국 기업들도 촉각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맨 왼쪽)이 5월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전제품 에너지 효율 표준에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상하원 의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하원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단계적 축소 및 일부 폐지를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해 전기차와 배터리 등 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했던 대로 법안을 당장 폐지하는 건 아니고 ‘외과수술’ 방식으로 축소될 것으로 보여 관련 한국 기업들도 셈법이 복잡해졌다.

12일(현지시각) E&E뉴스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전임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IRA를 겨냥한 법안을 발의했다. 

트럼프 정부가 앞세운 친환경 정책 폐지 기조에 발맞춰 관련된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이를 통해 예산을 65억 달러(약 9조2074억 원) 확보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해당 법안은 전기차 소비자에 제공했던 최대 7500달러 세액공제 철회를 포함해 2031년까지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45X)는 2032년 이후 완전히 종료한다. 이는 미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 한국 배터리 기업 다수가 제공받고 있는 혜택이다. 

이에 더해 전기차 및 가정용 에너지 설비 지원도 중단하는데, 이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시장의 수요 위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요컨대 한국 배터리 업체에 타격으로 이어질 변화가 법안 통과 여부에 달린 것이다. 현지시각으로 13일 하원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캐서린 코르테즈 마스토 네바다주 상원의원(민주당)은 로이터를 통해 “IRA를 폐지하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산업에 혼란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는 전임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한 IRA 지원을 발판으로 미국 현지에 다수 생산 설비를 구축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배터리를 포함한 한국 기업이 2023년 미국에 투자한 규모는 모두 215억 달러로 국가별 순위에서 가장 앞섰다. 

올해와 내년 다수 단독 및 합작공장 가동을 앞둔 상황에 전기차 및 재생에너지 지원책 축소라는 악재를 맞은 셈이다. 
 
미국 IRA '폐지' 대신 '수술'로 가닥 잡히나, K배터리 포함 한국 기업들도 촉각

▲ 미국 오하이오주 파이에트 카운티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과 혼다 배터리 합작공장. 2023년 2월28일 기공식을 열었으며 이 사진은 2024년 9월경 촬영됐다. < LG에너지솔루션 유튜브 갈무리 >

다만 이번 법안이 지원책의 ‘완전한 중단’이 아닌 단계적 축소에 머물렀다는 점은 한국 업체에 긍정적인 부분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운동 시절부터 IRA를 임기 첫날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와 비교하면 크게 완화된 셈이다.

또한 한국 배터리 기업이 확보한 에너지부(DOE) 대출도 영향권에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E뉴스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에너지부가 대출프로그램 사무국(LPO)에 할당한 자금 가운데 ‘의무화되지 않은(unobligated) 금액’만 폐지한다. 

삼성SDI나 SK온 등 DOE 대출을 최종 확정한 기업에는 예산이 그대로 집행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로이터는 “재생에너지 옹호 측에서는 단계적 폐지가 예상보다 심각하지는 않다는 입장이 나온다”라고 분석했다. 

미국 하원이 발의한 이번 법안은 IRA 폐지 수순으로 가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적용 범위가 상당하고 구체적인 데다 첨단 제조업과 탄소포집 등은 계속 지원해 공화당 정치인 및 지지자가 반대할 만한 요소를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하원 통과 뒤 상원에서 동의를 받는 과정에 법안이 수정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원 또한 여당인 공화당 주도라 의회 문턱을 넘기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공화당은 전체 100석 가운데 과반인 52석을 확보해 상원을 장악하고 있다. 

'IRA 폐지'가 행정명령이 아닌 법제화된 수단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4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각종 정책을 빠르게 밀어붙였다. 반면 이번 IRA 폐지는 의회 절차를 밟아야 해 시간을 두고 대응할 수 있다. 

일부 공화당 의원이 법안에 반대할 여지도 없지 않다. 일부 공화당 의원은 IRA 보조금으로 수혜를 받던 지역구 출신이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하원이 발의한 법안에 (공화당 의원) 모두가 만족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라고 짚었다. 

결국 배터리와 소재 및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북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대응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 에너지 관련 비영리기구 에너지연구소(IER)는 “IRA를 폐지 대신 메스를 대는 외과수술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공화당 의원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