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혼다와 합병 무산은 "경영진 현실감각 부족 때문", 폭스콘 협력도 불투명

▲ 혼다와 닛산 통합 논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은 배경은 닛산 경영진의 현실감각 부족에 있다는 내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나왔다. 혼다와 닛산 로고.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닛산이 혼다와 합병으로 재무 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협의가 무산된 이유는 경영진의 현실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닛산의 가치와 시장에서 입지를 과대평가한 경영진이 혼다와 합병 뒤에도 주도권을 유지하려 고집하며 결국 논의가 백지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13일 내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닛산이 충분한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자존심을 앞세운 결과가 ‘생명줄’을 내밀었던 혼다와 합병 철회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혼다와 닛산은 지난해 12월 통합 계획을 발표한 뒤 세부 조건을 논의해 왔으나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합병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 관계자들은 닛산이 혼다와 합병 과정에서 동등한 주도권을 쥐려 하면서 두 기업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혼다가 원활한 합병을 위해 자동차 생산공장 구조조정 및 인력 감축을 요구했으나 닛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닛산 경영진이 혼다의 도움 없이도 회생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점도 합병 논의가 무산되는 원인이 됐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시장 조사기관 펠햄스미서스는 “문제는 닛산 경영진에 있다”며 “닛산의 브랜드 가치와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입지, 회사의 역량을 모두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닛산은 지난해 11월 콘퍼런스콜에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의 수요 감소를 반영해 이익 전망치를 70% 낮춰 내놓았다. 또 9천여 명에 이르는 인력 감축과 공장 구조조정 계획도 제시했다.

그러나 로이터는 닛산의 대응 방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이어져 왔다고 전했다.

혼다와 닛산이 합병하면 사업에 필요한 인력과 자동차 생산 능력은 자연히 줄어드는 만큼 조직과 비용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요소로 꼽힌다.

닛산이 이를 거부하며 자연히 통합 논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내부 관계자들은 두 회사의 지분 합병비율과 관련한 의견 충돌도 혼다와 닛산 경영진 사이에서 중요한 걸림돌로 떠올랐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닛산 혼다와 합병 무산은 "경영진 현실감각 부족 때문", 폭스콘 협력도 불투명

▲ 일본 도치기현에 위치한 닛산 자동차 생산공장 내부 사진.

혼다 측은 닛산 경영진의 의사결정 속도가 늦고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전략도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혼다 경영진이 닛산을 동등한 지위에 두지 않는 고압적 태도를 보이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혼다 측은 닛산을 자회사로 두는 형태의 지배구조를 구축하려 했는데 닛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합병 무산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관계자의 말도 나왔다.

결국 두 회사의 통합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은 양측에 모두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로이터는 혼다와 닛산의 합병 계획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오를지, 아니면 닛산이 회생을 위해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전했다.

만약 두 기업이 통합 논의를 완전히 철회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한 쪽이 계약 파기에 책임을 지고 1천억 엔(약 9385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내야 한다.

닛산은 대만 폭스콘과 협업을 추진하는 대안도 검토하고 있다. 폭스콘이 전기차 사업 진출을 확대하며 닛산과 협업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폭스콘은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전자제품을 위탁생산하는 대형 제조사로 부품 기술과 생산 능력, 자금 여력 등 측면에서 모두 충분한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꼽힌다.

일본 컨설팅업체 어시메트릭어드바이저스는 폭스콘이 닛산을 인수하는 데 혼다보다 더 적절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전했다.

만약 폭스콘이 닛산을 인수하거나 브랜드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전기차 사업에서 성과를 더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닛산 경영진이 폭스콘과 협업 논의에도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면 원활한 협상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혼다와 닛산은 13일 오후 합병 논의와 관련한 공식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 자리에서 통합 계획 철회를 발표하고 자세한 배경을 설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