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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트럼프 2.0시대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주요 변수로 포함하는 글로벌 거시경제 상황은, 트럼프 시대의 재개와 함께 그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국내 통화정책을 이끄는 이창용 총재로선 글로벌 경제의 지각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트럼프2.0 재계 희비] 복잡해진 거시경제 셈법, 고민 깊어지는 한은 이창용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https://admin.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1/20250116154709_109968.jpg)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월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통화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월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화상연설에서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비판하고 통화정책에 대통령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후 1월 말 열린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만나 대화할 가능성까지 언급한 만큼 향후 압박 수위가 강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도 연준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지점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전용기 안에서 철강,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상대 국가와 같은 수준의 관세를 매기는 상호관세도 이번 주 내 시행할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정책은 미국 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연준의 주요 목표인 안정적 물가 유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관세의 단기적 물가 상승 압력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며 “관세가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용 카드로 쓰이고 물가 영향도 일시적 단기에 그칠 수 있지만 그렇다해도 통화 정책에는 충분히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은 국내 통화정책을 이끄는 이 총재의 기준금리 완화 기조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에 따라 글로벌 자금이 국내에 들어올 수도, 빠져나갈 수도 있는데 이는 원/달러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연말 연초 1500원을 위협하던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내려갔다지만 여전히 1400원대에서 움직이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는 한국이 3.00%, 미국이 4.5%(하단기준)으로 미국이 한국보다 1.5%포인트 더 높다.
이 총재가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며 한국과 미국 사이 기준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면 가뜩이나 높은 환율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 총재가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부진한 내수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한 데도 결국 높은 원/달러 환율이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국내 경기 상황은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을 선택해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1월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대에서 1.8%로 하향 조정했고 한국은행은 그보다 낮은 1.6~1.7%로 전망하고 있다.
이른 설 영향이라지만 1월 수출도 지난해 1월보다 10% 이상 감소했다. 한국 수출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은 2023년 9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시장에서는 현재 경기 상황을 놓고 볼 때 이 총재가 2월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 내릴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환율이 부담일 수 있지만 제때 대응하지 못해 경기 부진이 심화하면 오히려 자본 유출이 가속화해 환율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올해 한국과 미국이 기준금리를 각각 0.75%포인트와 0.25%포인트 내리는 등 한국은행이 연준보다 적극적 통화정책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장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환율이 한미 기준금리 차이에 반응하는 부분도 있지만 경기에 반응하는 부분도 있다”며 “지금 상황은 내수 부진에 좀 더 신경을 쓰고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할 때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총재 역시 1월 금통위에서 “현재 (금리 인하)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향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트럼프2.0 재계 희비] 복잡해진 거시경제 셈법, 고민 깊어지는 한은 이창용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https://admin.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1/20250124105620_77573.png)
▲ 1월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 모습.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병환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만 놓고 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압박 발언이 반가울 수 있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섣부른 기준금리 인하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 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어서다.
관세 정책 등으로 물가 상승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로 물가가 뛰면 연준은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꿔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최근 외신과 인터뷰에서 2월 금통위를 앞두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총재는 지난 주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2월 기준금리를 내리는 게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환율 등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이 총재가 2월 기준금리 인하설에 힘을 빼면서 시장에서도 2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의 단단한 고용 지표는 원화 약세로 이어지며 한국은행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며 “시장은 그동안 경기 부진에 더 주목하면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웠지만 지난주 이 총재의 발언을 고려하면 추가 인하 여력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바라봤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