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국내 기업들의 경영 위기가 고조되면서 재계에 인사 쇄신 바람이 불어닥칠 조짐이다. 이미 연중 비정기 인사로 일찌감치 조직 혁신에 나선 곳도 있고, 예년보다 연말 인사 시기를 앞당겨 시행한 곳도 있다. 아직 인사가 이뤄지지 않은 기업들 사이에는 인사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기에 기업들이 인사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이재용 ‘사면초가’ 삼성 부활 위해 칼 뽑아든다, 경영진 ‘인사 쇄신’ 예고
②KB금융 회장 취임 1년 채운 양종희, 연말인사 자신만의 색깔 보여주나
③비상경영 롯데그룹, 신동빈 인사에서 부회장단에 변화 주나
④SK그룹 연말 인사개편 핵심은 ‘슬림 더 슬림’, 최태원 ‘과감한 결단’ 전망
⑤진옥동 신한금융 장수 신뢰 기조 이어갈까, 책임경영 막판 변수는 내부통제
⑥CJ그룹 올해 정기 임원인사 시기 당길 듯, 이재현 쇄신보다 안정에 방점 전망
⑦‘조기 인사’ 한화그룹 화학사업 구조개편 분주, 김동관 사업 반등으로 승계능력 입증할까
⑧함영주 1기 마지막 CEO 인사, 하나금융 차세대 밑그림 나오나
⑨삼성물산 견조한 실적 유지, 오세철 '삼성 위기론' 영향 피할까
⑩생산·안전 중심 임원임기 대거 만료되는 HD현대, 정기선 부회장표 인사 본격화 예상
⑪‘절절포’ 우리금융 임종룡, 연말 인사로 신뢰 회복 길 다시 다진다
⑫현대건설 올해 조용한 인사기조 바뀔까, 윤영준 내실 강화에 달려
⑬위기의 삼성그룹, 금융계열사 CEO 누구도 안심 못한다
⑭대우건설 쇄신으로 불황 정면돌파 선택, 14년 만에 오너경영 체제 시동
⑮애플도 임원 세대교체 빨라진다, 애플카-비전프로 실패에 성장전략 찾기 ‘원점’
|
|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예년보다 이른 인사로 석유화학 계열사 사장단을 대거 교체하며, 사업 반등을 위한 강도 높은 체질 개선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최근 사업 악화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 계열사의 강도 높은 체질개선을 추진한다.
한화그룹의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에너지, 방위 사업을 도맡은 김 부회장은 중국의 저가공세로 화학 계열사들이 고전하자, 예년보다 이른 지난 7~8월 화학 계열사 사장단을 전격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경영 승계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한화에너지’ 산하의 한화임팩트·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솔루션’ 산하의 케미칼 부문(한화케미칼)·여천NCC 등 그룹의 화학 계열사들은 김 부회장의 승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계열사들이다. 김 부회장은 화학 사업 반등으로 경영 능력을 적극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만 중국 경기침체로 인한 석유화학 제품 수요둔화와 생산설비 과잉 등으로 인한 시황 악화에 화학 사업의 전면 구조개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6일 한화그룹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7~8월에 걸쳐 발탁한 화학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최근 대부분 정식 선임 절차를 마치고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남정운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한화케미칼) 대표이사는 폴리올레핀(PO), 염소·가성소다, 톨루엔 디이소시아네이트(TDI), 폴리염화비닐(PVC) 등 주력 제품군 가운데 ‘고부가치 제품 비중 확대’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은 69%인 폴리올레핀 계열 중 케이블 절연소재의 해외 사업에 무게를 실을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증가, AI 데이터센터 붐에 따른 전력망 확충으로 케이블 절연소재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폴리염화비닐 계열 제품군에서는 특수 배관 원료 'CPVC', 친환경 가소제 '에코-DEHCH’ 등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분류돼 사업 확대방안을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화솔루션-DL케미칼 합작회사(합작비율 50:50)인 여천NCC에 투입된 김명헌 대표이사는 여천NCC의 원가구조 개선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여천NCC가 나프타를 분해해 생산한 석유화학 기초유분 전량을 DL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계열사 물량으로 공급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천NCC의 영업비용(상반기 기준)을 보면 96%가 원재료인 중동 정유기업으로부터 나프타 매입에 쓰이는 만큼, 연간 단위로 갱신되는 나프타 구매계약을 손 볼 것으로 보인다.
또 여천NCC는 올해 12월 지난 20년 간 유지된 장기 판매계약이 끝난다. DL케미칼과 한화케미칼 공동대표이사와 함께 향후 합작운영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일도 김 대표의 몫이다.
김 대표는 과거 한화토탈에너지스에서 원료생산담당, 기술담당, 공장장 등을 맡으며 납사분해설비(NCC) 공장운영 관리 능력을 높게 평가 받은 인물이다.
▲ (왼쪽부터) 문경원 한화임팩트 사업부문 대표이사, 김명헌 여천NCC 대표이사, 남정운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대표이사 등 올해 7~8월 인사로 한화그룹 석유화학 계열사 대표를 맡은 이들은 최근 정식 선임 절차를 마치고 내년 사업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한화> |
문경원 신임 한화임팩트 사업부문 대표이사 역시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사업의 수익성 개선방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테레프탈산은 인조섬유 폴리에스터의 원료이자 PET, 필름, 도료, 산업용 자재 등에 쓰인다.
한화임팩트는 PTA 사업에서 올해 상반기 매출 9765억 원, 영업이익 79억 원으로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PTA 가격(1톤당)이 2022년 846.78달러에서 2023년 781.03달러, 2024년 상반기 769.81달러로 하락세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나상섭 한화토탈에너지스 대표이사는 친환경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사업을 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비롯해 합성수지, 필름, 자동차 부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의 원료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시황 악화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나 대표는 올해 인사에서 화학 계열사 사장단 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화학 계열사 대표다. 2023년 5월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2023년 완공한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 파일럿 공장의 파일럿 테스트를 완료하고, 향후 연간 10만 톤 생산이 가능한 상업공장 건설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POE는 기존 폴리에틸렌 제품보다 밀도가 낮고 탄성이 높으며 충격 강도가 우수해 자동차 내외장재, 식품 포장재, 신발, 전선 등의 소재로 사용된다. 최근에는 태양광 패널의 필름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태양광 사업을 하는 한화솔루션과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또 석유화학 기초유분 사업의 원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근 충북 대산단지 내 입주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과 함께 추진 중인 미국산 에탄을 공동 도입 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한화그룹의 석유화학 사업은 201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인수한 뒤로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이후 2016~2018년 한화그룹 전체 매출의 44%, 전체 이자·조세·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의 66%를 차지하며 효자노릇을 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기조에 따른 대량 증설로 공급과잉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후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겪었다. 김 부회장이 석유화학 사업 반등에 성공한다면 승계를 위한 경영 능력을 입증하게 된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지난 10월 72주년 기념사에서 석유화학과 에너지 사업과 관련해 “작은 성공에 안주했던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돌아보고 뼈를 깎는 혁신으로 시장을 다시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