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87년 vs 57년'.

1937년 설립된 일본 토요타자동차와 1967년 문을 연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업계에 발을 들인 뒤 흐른 시간이다.
 
정의선과 토요타 회장 또 만난다, 세계 1·2위 수소차 동맹 맺을지 '시선 집중'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내연기관차 시대 현대차는 토요타와 30년 격차를 완전히 따라잡지 못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개화하면서 현대차는 전기차 경쟁력에선 토요타에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 기준 토요타그룹은 세계 1위, 현대차그룹은 세계 3위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두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전기차보다 조금 더 먼 미래 수송을 책임질 수소연료전지차(FCEV) 분야에서 협력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는 오는 27일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는 '현대 N x 도요타 가주 레이싱(GR) 페스티벌'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그룹 회장이 직접 방문한다고 8일 밝혔다. 

정 회장과 토요다 회장은 행사를 앞두고 서울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페스티벌은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 WRC에 참여하고 있는 고성능 브랜드 현대 N과 토요타 GR이 모터스포츠 문화 발전을 위해 각사의 고성능 모델과 경주차를 선보이는 행사로, 현대차와 도요타의 첫 협업 사례다.

두 오너 경영인의 만남이 예고되면서 이번 행사가 현대차그룹과 도요타그룹 사이 수소차 분야 협력의 다리가 될지 주목된다.

두 회사는 이번 행사에서 각사 전시 부스에 차세대 친환경차를 전시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현대차는 1974년 선보인 포니 쿠페 디자인과 첨단 수소연료전지를 결합해 미래 고성능 방향을 제시하는 'N 비전 74'을, 도요타는 액체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액체 수소 엔진 GR 코롤라'와 일본 만화 '이니셜D'에 'AE86'란 이름으로 등장한 '스프린터 트레노' 기반의 수소 콘셉트카 'AE86 H2 콘셉트'를 전시한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 3월에도 일본 토요타 본사를 방문해 토요다 아키오 회장을 만났다. 당시 두 경영자는 수소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조태열 외교부장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일본 측 토요타와 그 부품 계열사 덴소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린 '제2회 한미일 경제대회'를 메인 스폰서로서 후원했다. 정 회장과 현대차 관계자들은 이 행사에서도 도요타 측과 수소·자율주행 분야 등에서의 상호 발전 방향과 향후 협력 지역 등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이번 레이싱 행사를 계기로 수소차, 수소 생태계 확장과 관련해 두 회사가 구체적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 수소차 시장점유율 기준 현대차는 세계 1위(32.7%), 토요타는 세계 2위(22.8%) 기업이다. 

하지만 작년 세계 수소차 판매량은 전체 자동차 판매량(9010만 대)의 0.0018% 수준으로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글로벌 수소차 시장 규모는 2022년 이후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소차 판매 대수는 2020년 9483대에서 2022년 2만704대로 배 넘게 성장했지만, 지난해(1만6413대)엔 20.7% 뒷걸음쳤고,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보다 34.1% 줄어든 5621대를 기록했다.

태동기 단계인 글로벌 수소차 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는 원인으로 턱없이 부족한 승용 수소차 선택지와 충전 등 인프라 부족이 지목된다.

현재 세계에서 승용 수소차 양산 능력을 갖춘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와 토요타, 일본 혼다 등 3개사뿐이다. 글로벌 수소차 선도업체인 현대차와 토요타로선 태동기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보다는 양국 정부와 기업의 협력과 다른 메이커들의 추가적 수소차 시장 진출 등을 통한 생태계 확산이 더욱 중요한 상황이다.

지난 6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산업장관이 만나 '청정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개발 워킹그룹'을 출범하고, '한일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및 활용 협력 플랫폼' 발족을 추진하는 등 민간 차원의 수소분야 협력을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

업계 관계자는 "양국 정부 차원의 수소 공급망 구축 협력 확대가 현대차와 토요타의 협업 논의에 속도가 붙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는 이미 독일 BMW와 수소차 공동 개발에 나서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토요타는 지난달 5일 BMW와 함께 3세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인프라 개발 공동 제작에 나선다고 밝혔다.

협업의 첫 결실로 BMW는 2028년 브랜드 첫 양산형 수소차를 출시한다.

토요타는 수소연료전지와 수소 탱크 등 주요 부품을 BMW에 전면 공급하고, BMW는 구동시스템 관련 부품 개발을 맡는다. 앞서 두 회사는 2011년 말 수소차 관련 제휴를 맺고 토요타가 수소연료전지 셀을 BMW에 공급해왔다.

양사의 협력 강화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소차 부품을 표준화하고, 비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는 내년 5월 2.5세대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탑재한 넥쏘 차세대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다만 2023년 3세대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내놓겠다던 당초 계획과 비교하면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차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 양산에 들어가면 가격을 기존 2세대 넥쏘보다 50% 이상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3세대 시스템은 대형 선박, 기차, 건물 등에 다양한 형태로 적용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3세대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양산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연기했는데, 이는 기술적 어려움뿐 아니라 수소차 시장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 측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현대차그룹과 토요타그룹이 수소 분야 협업을 공식화하면 이를 매개로 BMW를 포함한 수소 '삼각 동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BMW는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수소위원회'를 통해 수소 충전 인프라 협력 방안을 지속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소위원회는 지난 6월부터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앞서 2019년엔 정의선 회장이 수소위원회 공동의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