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6월] 공급과잉 '차이나 쇼크'에 한국 제조업 위기, 첨단 소부장 육성이 답이다

▲ 중국 산둥성 치루(齊魯)의 석유화학 공장 모습.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

[비즈니스포스트] 중국발 공급 과잉이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을 붕괴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당장 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 산업은 석유화학(나프타, 합성수지 등), 철강, 조선, 전력설비(전선 등) 등 전통적 제조업 외에도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전기차, 우주항공, 드론, 로봇 등은 공급과잉에 따른 피해가 아니라, 이미 중국에 기술력이 뒤처져 따라가기 힘든 산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제조업의 부상은 2015년 리커창 총리가 양회를 통해 공식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계획에 따라 제조업 대부흥 추진계획을 착착 진행한 결과다.

이 계획은 2015년부터 10년 단위로 2045년까지 총 30년에 걸쳐 세계 최강 제조국으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세대 정보기술(IT), 로봇, 항공우주, 조선, 전기차, 전력설비, 신소재, 신재생에너지 등 10대 핵심 제조업을 육성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과거 우리나라 석유화학 공장에서 생산한 나프타, 합성수지 등을 주로 수입해 사용하던 중국은 이제 이들 품목 생산량에서 우리나라를 추월한지 오래다. 한국산 석유화학 제품 수입 대신 값싼 중국산 대량 수출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 공장을 통째로 매각해야 하는 코너에 몰렸다.

철강 생산량은 이미 중국이 세계 1위가 된지 오래다. 한국은 중국, 인도, 일본, 미국, 러시아 등에 이어 6위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 내 부동산 경기침체로 내수 수요가 위축되고, 미국의 중국산 수입장벽 정책기조에 따라 값싼 철강 제품들은 한국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와 한국 철강산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중국 조선도 이미 생산량에서 세계 최고다. 시장조사업체 클라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5월 세계 선박 수주량 점유율은 중국이 85%로 압도적이었다. 우리나라 점유율은 10%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을 비롯해 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서 앞서고 있다곤 하지만, 중국이 빠르게 기술력을 높이고 있어 언제 고부가가치 선박에서도 우리 조선이 밀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배터리 등 소위 첨단산업이라 불리는 품목에서도 중국의 위협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미 LCD는 중국이 1위를 차지한지 오래고, 최근 우리나라가 독보적으로 앞서고 있다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에서도 중국이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 대략 세계 OLED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약 5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불과 5년 전만 해도 OLED 점유율이 미미했던 중국은 현재 30% 수준까지 치고올라왔다.

또 마이크로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력에서도 이미 우리나라 기술력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급 프리미엄 제품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중저가 제품 시장은 화웨이 오포 비포 등 중국이 세계 1위다.

하지만 올해 1분기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동안 줄곧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가 화웨이에 역대 처음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도 곧 중국과의 싸움이 최대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에 이어 우리나라 최대 효자 산업으로 꼽히는 배터리도 중국의 공급과잉에 따른 위기를 맞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22%로 낮아진 반면 중국은 60% 가량을 차지했다.

특히 세계 전기차 수요침체에 따라 저가 배터리 사용량이 크게 늘면서, 중국 CATL 등 배터리 제조사들은 저가 LFP(리튬 인산 철) 배터리 공급을 대거 늘리며 세계 최강 배터리 제조국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데스크리포트 6월] 공급과잉 '차이나 쇼크'에 한국 제조업 위기, 첨단 소부장 육성이 답이다

▲ 중국 CATL의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배터리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배터리뿐인가. 배터리를 주요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은 6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세계 최강 전기차 생산국이 됐다.

아직은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열리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차를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중국의 세계 자동차 시장 지배도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반도체에선 여전히 미국, 한국, 일본 등이 앞서가고 있지만, 20~30년 내 중국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이 이들을 앞지를 날이 올 것이라는 걸 부정하는 전문가들은 없다.

중국의 제조업 굴기는 곧 우리나라 제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은 대부분 중국이 대량 생산체제를 갖춘 제조업과 겹치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죽으면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가 줄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경제가 침체하고, 경제가 침체하면 저소득 소외계층은 물론 중산층이 몰락하고, 결국 나라 경제가 주저앉게 된다. 기어코는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진다.

지금 우리는 제조업 붕괴, 일자리 붕괴, 소득 감소 등 국가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의 한 복판에 서 있다. 국내 대표 그룹사들이 세계 경기둔화와 중국발 공급과잉에 위기를 맞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와 정치권, 재계, 학계를 넘어 국민 모두가 새로운 살 길을 찾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

정부는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등 새로운 먹거리 첨단산업에 대한 과감한 세제 등 인센티브 지원책과 인재 육성책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 중국 공급과잉에 경쟁력을 잃어가는 10대 전통 주력산업의 과거 영광만 보고 있다간 국가 경쟁력 자체가 사라진다. 

기업들도 빠르게 사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국은 과잉공급이 두렵지 않다. 지금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대량생산과 저가 공급으로 일단 다른 국가 제조업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독차지하려 한다. 시장을 독차지한 후에는 기술력을 높여 부가가치 높은 제품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게 그들의 ‘중국제조 2025’의 목표다.

이런 중국과 대량 생산으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우리 제조업은 중국이 하지 않고, 중국이 따라오기 힘든 첨단 제품으로 주력 품목을 변경해야 한다.

특히 과거 일본이 그랬듯이 소비자(B2C) 제품보다는 기업용(B2B) 제품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즉 소재 부품 제조장비 등 중국을 비롯해 장차 인도 등이 대량 제조업 생산체제를 갖추는 데 필요한 B2B 제품을 공급하는 사업구조로 개편하고, 이 분야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정부의 산업정책 초점도 이같은 소부장 기술과 산업을 육성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와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 강국 사이에서 수출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나라다.

세계 열강들의 패권 경쟁과 갈등 국면이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와 산업계는 우리만의 제조 경쟁력과 수출 활로를 만들어야 한다. 김승용 산업&IT부장 
 
[데스크리포트 6월] 공급과잉 '차이나 쇼크'에 한국 제조업 위기, 첨단 소부장 육성이 답이다

▲ 지난 3월28일 태국 방콕 북쪽에 위치한 논타부리에서 열린 국제 모터쇼에서 한 관람객이 중국 BYD의 전기 슈퍼카 '양왕 U9'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